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 보여준 '산복빨래방'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산복도로에 있는 호천마을에 가면 돈 대신 이야기를 세탁비로 받는 특이한 빨래방이 있다. 산복빨래방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불, 패딩, 담요 등 빨랫감 말고도 이야기보따리를 한가득 안고 이곳을 찾는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어르신들은 부산 근현대사를 품어온 산복도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다. 유튜브를 통해 산복빨래방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지난 5월 초 부산일보 디지털미디어부 2030팀은 산복도로에 빨래방을 열었다. 과거 기사에도, 책에도 없는 산복도로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산복도로의 진짜 이야기는 하루, 이틀 찾아가 ‘부산일보 기자인데요, 옛날에 산복도로는 어땠어요?’ 식의 취재로는 나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주민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산동네에 빨래방을 차린 김준용 2030팀장의 말이다.

부산진구 범천동 호천마을에 있는 산복빨래방. 빨래방을 차린 부산일보 2030팀원들은 빨랫감과 함께 주민들의 이야기를 받아 부산일보 지면과 유튜브 <산복빨래방>에 1주일에 한 번 오롯이 기록하고 전한다. 사진=부산일보 김준용 기자 제공

문을 열고 두 달 남짓, 빨래방은 마을 사랑방으로 변했다. 평균 연령 73세의 어르신들은 믹스커피를 건네고, 계란을 삶아오고, 방아잎전을 부쳐오고, 비빔국수를 말아 내놓으며 정담을 나눈다. 그렇게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사는 이야기는 까마득히 이어진 산동네 계단을 타고 굽이굽이 흘러 산복도로의 굴곡진 역사를 드러낸다. 지난주 기자협회보를 통해 부산일보의 산복빨래방 소식이 알려졌다. 출입처 대신에 빨래방으로 출근하는 기자와 PD들, 부산만이 가진 ‘부산의 이야기’를 세탁비로 받는다는 스토리, 콘텐츠 제작비로 2000만원을 기꺼이 내놓은 언론사…. 전례를 찾기 힘든 지역 언론의 주민 밀착 프로젝트는 SNS에서 화제가 됐다.


산복빨래방에 대한 반응은 2030들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에 회사의 지원이 더해진 결과이다. 지역 언론사에 2000만원은 적잖은 돈이다. 빨래방을 차려 취재하겠다는 2030팀 의견을 반영해 투자를 결정한 부산일보 의사결정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일주일에 한 번 부산일보 지면과 8~9분짜리 유튜브 영상으로 나가는 산복빨래방은 ‘갑툭튀’가 아니다. 지역밀착형 콘텐츠에 쏟은 투자와 콘텐츠 경험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 그간 부산일보는 동굴 안에 매몰된 부산 지역의 아픈 역사를 땅 위로 드러낸 ‘부산굴記’, 코로나 사망자 애도 프로젝트 ‘늦은 배웅’, 부산 해녀를 기록하는 프로젝트 ‘부산숨비’ 등 꾸준하게 지역특화 콘텐츠를 내놨다.


전통 미디어가 그렇지만 특히 지역 언론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구독자 수와 광고 수입 감소는 말할 것도 없고, 디지털 수익은 대부분 제로에 수렴한다. 부단한 콘텐츠 혁신과 지역민과 호흡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돌아선 독자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올해로 창간 76주년을 맞은 경남신문의 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도 주목할만하다. 경남신문은 지역 언론이 지역과 멀어진 것이 지역 언론의 위기를 낳았다며 경남 사람들의 이야기, 경남의 이야기를 조명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경남신문 취재진은 경남 의령군 궁류면 운계2리 입사마을로 들어갔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는 고민의 산물이다.


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는 지역 현안에 밀착하고, 지역의 목소리를 오롯이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로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하며 버티는 게 상당수 지역 언론의 현실이다. 지역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시나브로 잃어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서울에서 주목하지 않은 사안에 집중하고, 지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역 언론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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