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평소에 잘 안 먹던 김밥을 자주 먹는다. 얼마 전에는 딸아이랑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단어 맞추기 놀이를 했다. 회전문을 보면 ‘왈츠’가 떠오른다. 이쯤 되면 드라마에 단단히 빠진 게 맞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자꾸 생각나는 드라마다.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자폐 변호사’가 주인공인 점이나 모든 법률 분쟁은 해피엔드로 마무리되는 점 등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지점들이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 중독되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필자는 사단법인 ‘직장갑질119’의 운영위원이라 유독 끌리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대형 로펌에서 펼쳐지는 직장 생활, 주인공 상사인 ‘정명석 팀장’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정 팀장은 주인공을 처음 만난 날 대표에게 달려가 주인공이 ‘우리랑은 다르다’고 항의한다. 그러나 주인공 우영우가 팀장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법률 쟁점을 담은 의견을 제시하자 곧바로 수긍하며 주인공을 격려한다. 우영우에게 “보통의 변호사와는 다르다”고 언급한 뒤 즉시 본인의 말실수를 깨닫고 사과한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정명석의 동료가 찾아와 “공들여 작업한 고객을 증인석에 불러내는 바람에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며 난동을 부리자 팀원들을 나무라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열심히 사건 해보자, 나는 쪽팔려서 이만 간다”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 직장에서 그런 완벽한 상사를 만나기가 쉬울까. 7월16일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제정 3주년을 맞아 ‘직장갑질119’가 2022년 1~6월까지 제보건을 분석한 결과 ‘괴롭힘 제보’가 55%에 달했고, 그 중 유형별로는 ‘상사의 부당지시’가 53.6%로 가장 많았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다수의 상사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지적할 수 있다면) 후배에게 칭찬보다는 호통을 치고, 직원들 실수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팀장으로서 책임보다는 직원 개개인의 잘잘못을 따지기 바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부당한 지시’가 내려지는 과정이다. 소정근로시간 외에 업무를 시키거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마저 주지 않거나, 자신의 일을 떠넘기거나, 정확하지 못한 업무 지시를 하는 등 모든 ‘부당한 지시’의 출발은 상사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상사들은 자신의 미숙함과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모든 문제는 ‘예전 만큼 야근을 하지 않는, 선배의 지시에 꼬박꼬박 말대답(의견 제시)을 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후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굳게 믿는다.
어찌 보면 드라마 속 정 팀장이 후배들을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자연스럽다. 입사하기 전까지 누구나 그런 상사와 함께 일하는 미래를 꿈꿔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직장에 들어간 뒤로는 정 팀장과 같은 인물은 각자의 직장에서 찾기 어려운 ‘이상형’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 아닐까. 현실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항상 마음속으로만 동경하는 어떤 장면들, 인물들을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잠시나마 위로를 받고, 지옥같은 상사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