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라니냐다. 2020년 9월 시작된 라니냐가 이번 가을과 겨울까지 3년째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라니냐는 남미 페루 부근 적도 동태평양의 수온이 평소보다 낮아지는 현상이다. 수온 그래프가 3번이나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트리플 딥’ 곡선을 그리게 됐는데 매우 이례적이다. 보통 라니냐는 1~2년 정도면 사라지고 중립을 되찾기 때문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3년 연속 라니냐는 이번 세기 들어 처음이라고 밝혔다.
라니냐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뭘까. 라니냐는 적도 부근 바다의 수온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의 대기 순환과 바람, 해류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지난여름 라니냐로 적도 상공에 부는 무역풍이 평소보다 강해지면서 극단적인 이상기후를 몰고 왔다. 미국 중북부와 동아프리카, 남미에는 기록적 가뭄이, 파키스탄 등 아시아에는 홍수가 찾아왔다.
이번 겨울도 라니냐 시즌이 계속된다면 이상기후와 싸워야 할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 북부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는 강한 한파가 찾아온다. 반면 미국 남부와 플로리다 등 동부 해안은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뜨거운 바닷물이 밀려드는 적도 서태평양의 나라들, 그러니까 동남아시아와 호주 북부에는 평소보다 많은 비가 내린다.
지난 라니냐 시기를 되돌아보면 우리나라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건조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초겨울 한파가 거세게 밀려왔고 겨우내 강수량도 기록적으로 적었다. 대지는 메말라갔고 이례적인 봄철 산불로 이어졌다. 우리도 라니냐의 입김을 피해 가지 못한 것이다.
울진과 삼척에서는 역대 최장인 213시간 동안 산불이 이어졌다. 역대 최대 면적의 산림이 불탔다. 밀양 산불은 여름의 문턱인 6월까지 계속돼 가장 늦게 발생한 대형 산불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당시 산불 재난특보를 하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미국 캘리포니아주처럼 산불이 일상이 되면 어쩌지 하는 깊은 걱정이 들었다.
기상청이 발표한 3개월 전망에 따르면 10월까지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기온이 이어진다. 그러나 11월은 평년과 비슷해지고 12월은 다소 낮은 경향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강수량은 10월은 평년 수준이겠지만, 11월과 12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겠다는 예상이 나왔다. 라니냐의 영향이 장기예보에도 반영된 것이다. 이번 겨울에도 한파와 가뭄, 그리고 이어지는 산불까지 대비해야 한다.
라니냐로 서늘한 날씨가 찾아오면 지구가 시원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도 든다. 이에 대해 페테리 탈라스 WMO 사무총장은 지난 라니냐 시기에 지구의 기온 상승이 일시적으로 느려지기도 했지만 온난화의 흐름이 멈추거나 뒤집힌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라니냐의 반대 현상인 엘니뇨 시기에는 지구의 평균기온을 끌어올리는, 일시적 효과가 나타난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기후위기라는 말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지구가 열의 균형을 되찾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 현상으로 2~5년 주기로 찾아왔다. 그러나 최근 기후위기와 맞물리면서 엘니뇨와 라니냐가 전 세계 이상기후의 강력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