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2022 개정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 8월30일 국민 참여 소통 누리집을 개설하고 15일간 의견을 수렴하였다. 누리집은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과 교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지침 등을 제공하고 국민의 판단을 돕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교육부는 수렴된 의견을 교육과정 개발진에게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국민 참여 방식이 최선이었을지 의문이 남는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댓글 등의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하거나 근거 없는 비방이 넘쳐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교육과정에서 ‘성평등’ 내용을 삭제하라는 부분이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제시하는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다양한 성(性)을 다루게 될 수 있다며 ‘양성’ 평등이라는 용어로 변경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댓글이 전 교과 게시판에 달리면서 토론의 순기능을 잃고 맹목적인 도배와 비난으로 흐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댓글들이 달리는 시점이나 내용을 보면,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댓글’ 남기기 활동을 진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국회 교육위 강민정 의원이 분석하여 오마이뉴스에 밝힌 바에 따르면 1394건의 공개 의견 가운데 ‘성평등 용어 삭제’를 요구하는 표절 의심 댓글 102개를 발견했다고 한다. 해당 내용은 조사 등만 다를 뿐 붙여넣기 한 것처럼 거의 동일한 내용이라고 한다. 게다가 동성애 옹호 교육 반대, 좌파교육 반대 등 교육과정 개발진들이 제시하지도 않은 내용을 근거 없이 비난하는 댓글도 등록되어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교육부는 이 또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이고 열린 행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육과정 개선을 위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합리적인 절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숙의’하는 과정 없이, 엉망진창인 댓글을 모아 개발진에게 전달하는 것이 과연 민주적이고 열린 행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작 건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곳에서는 갈등과 분란의 장면만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어 교육과정에서 ‘매체’ 영역의 신설을 두고 미디어 과의존이나 문해력 저하와 같은 문제를 비판하는 교사들과 미디어 리터러시 등 디지털 세대에 필요한 새로운 역량 교육이 필요하다는 교사들이 편을 갈라 댓글로 싸우는 장면이다. 미디어 과의존이나 문해력 저하도 중요한 과제이고, 미디어 리터러시도 꼭 필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공동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협의체는 보이지 않는다.
교육과정 개정은 학문적 지식과 교육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대상자의 수준과 관심, 시대적 변화 등을 고려하여 진행해야 하는 고도로 전문적인 일이다. 교육학자나 현장 교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수많은 연구 논문과 해외 사례 등을 주도면밀하게 조사하고 토론해가며 작성하는 국가교육과정 총론에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들이 조직적으로 도배한 내용을 참고하거나 반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물론 교육과정 개정은 여러 교과와 분과의 첨예한 힘겨루기가 발생하는 어려운 과제이다. 하지만 소통과 참여라는 단어가 허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숙의와 토론의 기회를 통해 교육과정을 개정하길 바란다. 한 세대의 교육을 좌우하는 교육과정이 2022 ‘댓글’ 교육과정으로 불리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