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유는 보편적 가치이며,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라며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된다면 모든 자유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6개월이 지나며 포용과 협력은 온데간데없고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국정 운영으로 자유의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존경하는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이 보면 통탄할 일이다.
윤 대통령이 아세안+3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 해외 순방을 40여시간 앞두고 MBC에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며 ‘언론탄압’ 비판에 직면했다. 대통령실은 “전용기 탑승은 외교·안보 이슈와 관련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오던 것”이라며 “MBC의 왜곡·편파 보도가 반복되어 온 점을 고려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통령 비속어’ 보도를 ‘가짜뉴스’로 결론내고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국익에 반하는 일이 반복될 우려가 커 탑승을 불허했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주장하는 국익이 결국 언론의 자기검열을 강화해 보도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언론계는 분개하고 있다. 이제 언론은 국익에 대한 판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제2의 MBC’가 될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언론 보도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 잣대를 권력자가 휘두르며 재단하면 민주주의는 질식한다. 특히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일에 섣불리 ‘가짜뉴스’라고 낙인찍는 일은 더더욱 위험하다. MBC 보도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음에도 미리 가짜뉴스라고 결론 내리고 취재를 제한하는 일은 언론 자유에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윤 대통령은 출마선언을 하며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다”라고 말했다. ‘국익’을 이유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야말로 독재시대의 유산이다. 윤 대통령은 ‘국익이 곧 공리’라는 주장을 편 듯 보이지만, 국익을 판단하는 주체가 권력자일 경우엔 비판하는 목소리를 탄압하는 도구에 다름 아니다. 법의 잣대로 ‘악’을 때려잡던 검사 시절에 본인의 판단이 곧 ‘선’이라는 몸에 밴 의식이 대통령인 지금도 선악 이분법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뿐 아니라 언론단체들이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 불허 철회를 촉구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불통의 리더십을 본다. 여당에서도 “권력의 사유화”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정 언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대통령의 사적 영역이라 자유지만, 우호적이지 않다고 정보접근권을 자의적으로 차별하면 권력을 사유화한 셈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
대통령의 외교 활동은 국민에게 투명하게 전달되고 감시받아야 한다. 전용기 탑승 취재는 대통령이 시혜를 베푸는 취재 편의가 아니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언론에 공개되어야 하는 일이다.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취재 제한은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열린 한미,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벌어졌다. ‘풀(대표) 기자 취재’ 대신 대통령실 관계자가 회담장에 들어가 현장 기자들은 편집된 내용을 받아써야 했다.
밀은 <자유론> 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에서 “온 인류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해서 강제력을 동원해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은, 권력을 장악한 한 사람이 인류 전체를 침묵시키는 것만큼이나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배타적으로 언론을 대하는 것은 ‘반지성주의’와 다름없다. ‘자유주의자’ 윤 대통령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