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26일,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15만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 쓰나미는 리히터 규모 9.0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피해를 본 나라만도 인도부터 베트남까지 12개 국가였으며, 그 물결이 아프리카의 서부 해안에 닿았을 정도였다. 이 참사로 북반구의 매서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동남아시아에 여행을 왔던 관광객들도 속절없이 죽어갔다. 재난은 TV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었고, 희생자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며 초혼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쓰나미에서 재산을 잃었어도 목숨은 부지한 사람들이 있다. 인도양에 있는 안다만 원주민이다. 안다만은 인도 정부가 직접 통치하는 특별영토로 해군기지가 있는 곳이다. 이날 새벽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 곳곳에서는 겨울을 나기 위해서 와 있던 철새들이 일제히 시끄러운 소리를 지르며 둥지를 버리고 높은 곳으로 피해갔다. 그러자 안다만 원주민은 새들의 울음소리를 이해하고 곧바로 산으로 따라 올라갔다. 다음 날 아침, 인도 해군기지는 무참히 파괴되었고 군함과 해군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봤고, 안다만 원주민은 산에서 내려와 부서진 마을을 다시 세웠다. 혹 안다만의 회색바람까마귀가 다가올 위험을 알리고 대비시키는 언론이 아니었을까?
오랜 군사정권의 억압에 눌려 지냈던 한국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87년부터이다. 그전까지 군사정권은 언론탄압을 위해 보도지침을 내리고, 언론사에 정보요원을 상주시키며 기사를 검열했고, 저항하는 언론인은 검경을 비롯한 공안 기관을 통해 압박하고 구속했다. 그러나 오랜 억압에도 길들기를 거부했던 언론인은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굳건히 만들어나가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들도 광고주와 금융자본에는 맥을 못 췄다. 오히려 샴페인을 함께 터뜨리며 즐기는 사이에 외환위기를 맞이했다. 위기가 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2019년 시작된 코로나19와 미·중 갈등, 최근의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기준금리를 단기간 지속해서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았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2023년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쓰나미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상태이다.
그러나 언론은 1997년처럼 여전히 태평하다. 지난 정부의 어설픈 부동산정책에 맞서 내 집 마련을 위해서라면 ‘영혼을 끌어서라도’ 가상화폐와 부동산에 쏟아붓도록 부추긴 금융권에 언론도 동조하고 방관했다. 그러나 이 오도된 열정이 가져올 위험과 고통은 경고하지 않았다. 외신은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를 길고 고통스러울 것으로 예상한다.
언론은 보고 들은 것만 전달할 뿐, 판단은 수용자의 몫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보고 들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어딘가에 있을 진실과 의미를 찾아서 보도해야 한다. 전 정부만 탓하는 현 정부의 무능과 무기력 그리고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탐욕을 비판하고 경고의 신호를 보내야 한다. 또 다른 론스타는 성공하겠지만, ‘영끌’을 해서라도 살아보려던 이들은 몰락할 처지이다.
금융위기라는 쓰나미가 몰려온다. 받아쓰며 철새보다 못한 철근 덩어리가 될 것인지, 위험을 알리는 회색바람까마귀가 될 것인지는 선택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