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만드는 법제화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국회 과방위는 지난 2일 전체회의를 열어 KBS와 MBC, 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와 사장 선임에서 정치권 입김을 축소하는 내용의 방송 관련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법안이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어선 건 1987년 방송법 제정 이후 35년 만이다.
개정안은 현재 9~11명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21명의 운영위원회로 확대하고 국회(5명), 시청자위원회(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6명), 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각 2명)에서 추천하도록 했다. 공영방송 사장은 100명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면 운영위원회에서 3분의 2이상 찬성으로 선임하는 내용도 담겼다.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 운영위원회에 정치권 추천 몫을 대폭 줄이고, 시청자 기구·학회·방송 직능단체 참여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여야 정치권의 분할 독식을 막고 시청자와 전문가, 방송 종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취지의 개정안에 국민의힘은 ‘친 민주당’, ‘친 민주노총’, ‘친 언론노조’ 인사들로 운영위를 채우려 한다고 주장한다. 과방위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지난 1일 “미디어학회는 친 민주당 성향이고, 시청자위원회는 친 민노총 언론노조 출신 사장이 구성하고, 방송 직능단체는 언론노조와 연계조직인 게 주지의 사실”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2일 “공영방송을 민주노총이 사실상 운영하는 노영방송으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라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밑도 끝도 없는 억지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시청자위원회는 ‘친 민주노총’이고, 방송·미디어 학회는 ‘친 민주당’이고, 한국PD연합회 등 방송 직능단체는 ‘친 언론노조’라고 강변한다. 시청자위원회는 방송법에 따라 시청자 권익 보호를 위해 각계의 시청자를 대표하는 단체들의 추천을 받아 위촉하도록 하고 있고, 방송 직능단체는 정치적 가치가 다양한 기자와 PD, 기술인 등이 모여 있다. 언론노조가 아닌 다른 노동조합에 가입한 회원들도 많다. 그런데도 모조리 싸잡아 언론노조와 민주당 성향이라고 낙인찍고 있다. 조선일보는 한술 더 떴다. 3일자 사설에서 “자신들 편이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회 다수를 차지하도록 하겠다는 것…공영방송 사장 교체를 어렵게 하는 개정안”이라고 했다. 개정안의 어떤 내용이 공영방송 사장을 쉽게 바꾸지 못하게 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국힘의 억지 주장 배경에는 여당일 때 공영방송법을 처리하지 못한 민주당 탓이 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고 이용마 기자의 두 손을 맞잡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을 확실하게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17년 집권한 민주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언론시민단체와 야당의 요구에 5년 내내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이제야 입법 속도를 내니 진정성에 의심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법제화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온전히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공영방송 내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리저리 갈라지고, 줄서기와 배제의 정치가 횡행한 게 사실이다. 공영방송이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법제화만큼이나 내부 반성과 쇄신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공영방송법 개정안은 앞으로 법사위와 본회의 등 넘어야 할 관문이 남아있다. 여당은 억지 주장만 반복하지 말고, 야당은 시늉만 내지 말고 공영방송법 개정안 처리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