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보니까 날씨가 엄청 춥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에게 내일 날씨를 확인하셨냐고 물었더니 유튜브에서 봤다는 말이 돌아왔다. 회사를 마치고 거리에 나온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남성은 아마도 어떤 언론사가 올린 날씨 관련 영상을 봤겠지만, 그에게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와 유튜브는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언론사는 꾸준히 차별화하려고 하지만 20년 전에는 인터넷 포털에, 이제는 유튜브 안에 가두리 양식을 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만여개까지 늘어난 언론사가 조사까지 똑같은 기사를 포털에 등록하고, 밤늦은 취재 현장에서도 ENG 카메라보다 셀카봉 끝에서 댓글이 쉴 새 없이 올라가고 있는 휴대전화가 많이 보일 때도 있다. 이제는 몇 명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크리에이터들과 언론사는 같은 것을 보고 듣는 똑같은 링 안에 서 있다.
유튜브 다음에는 또 어디에 갇히게 될지 모른다. 계속 그곳에서 싸우는 데 총력을 다할 것인지, 아니면 ‘언론’의 의미를 되짚어 새로운 역할에 집중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때때로 정부와 기업에 개혁과 혁신을 강력하게 주문하는 언론은 본인에게 그러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을 가장 어려워한다.
대통령 전용기 내부 정도를 제외하고는, 본 것과 들은 것을 전달하는 기존의 역할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버들, 또 전문가 등 다른 주체들과 나눠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는 진단은 상수다. 전문성이나 정치적 선명성도 비교하기 어렵다. 공익을 위한 질문을 계속하고 싶다면, 그러기 위한 진정성과 정통성을 인정받고자 한다면, 이제 언론사는 ‘전통’보다는 ‘정통’에 집중해야 한다.
팩트체크, 데이터 저널리즘, 솔루션 저널리즘 등 언론의 전통성과 새로운 역할을 이야기하고 실천하는 시도는 계속됐다. 한때 유행처럼 번지는 말이 아니길 바랐지만 이제는 또 새로운 ‘용어’를 찾을 때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앞으로도 ‘용어’에 집착해 특별하거나 트렌디한 보도 양식 중 하나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의미나 실천방식이 저널리즘에 배태돼야 할 속성으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과 트위터가 유행시킨 팩트체크는 그와 함께 희미해졌다. 사실관계 확인은 언론의 기본이지만, 트럼프와 언론을 믿을 수 없는 대중이 함께 탄생시킨 ‘용어’다. 다만 ‘팩트체크’의 유행은 언론인들에게 사실관계 확인이라는 ‘정통’에 대한 성찰할 기회를 부여했고, 원자료의 출처 등을 기사 말미에 밝힌다거나 하는 형식 측면의 유산을 남겼다.
데이터 저널리즘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보고 듣는 건 믿지 못하겠다, 한두 명 인터뷰해놓고 일부를 전체로 확대해석하는 게 아닌지 의문을 품는 수용자를 데이터로 설득할 수 있다는 유산을 남겼다.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움을 데이터로 파고 들어갔을 때, 고비용·저효율이라고 내부에서 눈총을 받을지언정 독자들은 이를 실천하는 언론사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질문을 계속하려면 우리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언론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스스로가 언론의 질문할 권리는 배태된 게 아니란 사실을 잊었는지 모른다. 유행하는 ‘용어’가 지나가며 남겨놓은 몇몇 쓸만한 유산들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질문할 수 있는 권리는 시청률이나 클릭수가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 해야하는 것을 꾸준히 좇는 우리의 태도에 있는 것은 아닐까. 1등이 아니라 원칙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