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보에 갓 입사한 2015년, 같은 해에 기자가 된 타사 수습들을 따라다니며 취재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제도지만 그때만 해도 퇴근 없이 경찰서에서 숙식하는 ‘하리꼬미’는 수습기자의 필수코스였다. 매일 비좁은 공간에서 겨우 서너 시간밖에 못 자 꾀죄죄하고, 시간마다 걸려 오는 선배 전화에 긴장하고, 경찰이나 취재원 앞에서 애써 의연한 척하던 얼굴들. 그랬던 이들이 올해로 9년차가 됐다. 더 이상 수습 시절 서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알 거 모를 거 다 아는’ 연차다.
아직 평기자지만 어느새 후배들이 제법 생겼다. 그동안 적어도 3~4개 출입처를 거치면서 나와 맞거나 맞지 않은 분야를 인지하고 있다. 물론 내가 원하지 않은 부서로 인사가 나도 하루아침에 적응해 능숙하게 기사를 써낸다. 여전히 바이라인(기자명과 이메일)의 무게를 느끼지만 기자 일이 손에 익었다고 자부할 순 있다. 뉴스룸에선 한창 일 잘하는 시기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째 요즘 이들의 표정은 수습 때보다 어두워 보인다.
기자협회보는 자사 9년차 기자의 눈으로 같은 연차 기자들의 삶, 이들이 체감하는 기자사회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2015년 입사해 재직 중인 기자 5명과 지난해 퇴사한 2명 등 모두 7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주니어도 고연차도 아닌 이들의 목소리를 ‘MZ세대의 주장’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9년차 기자들은 어떤 기로에 서서 ‘회사의 미래와 결부된 나의 미래’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2015년 입사자가 기자를 그만둔 이유
지난 1~2년 사이 젊은 기자들이 잇달아 퇴사하면서 ‘언론계 엑소더스(대탈출)’가 화두로 떠올랐었다. 탈 기자 행렬 중심에 2015년 입사자들이 있었다. 최지훈(가명)도 그중 한 명이었다. “기자들에겐 세상의 모든 불행이 내 일이야.” 기자생활이 어땠냐는 물음에 지훈이가 내놓은 대답이다. 그의 말처럼 기자는 안타깝고 슬프고 끔찍한 사건·사고와 가까이 있다. 기사를 쓸 땐 좋은 점보다는 먼저 나쁜 면을 부각해 비판하곤 한다. 취재 과정에서 긍정적인 대화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주고받는 일상이 지훈이에겐 고통스러웠다.
“연차가 쌓이는데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더라. 인사철마다 원하는 부서 지원해도 반영이 잘 안 되잖아. 윗선에 직접 이야기도 못 하고. 돌아보면 굵직한 기자상도 받았고 나름대로 회사에 헌신했는데 늘 부족하고 일 못하는 기자라고 자책했어. 언론사 안에서 가스라이팅당한 게 아닐까. 내가 죽어야 이 불행이 끝날까 싶은 생각까지 들더라고.”(지훈)
경제지에서 8년간 일했던 신서영(가명)은 ‘결국 기자는 전달자’라는 한계를 느끼고 지난해 퇴사했다. 대학 졸업 후 정규직 공채로 입사한 첫 직장이라 애정이 컸지만, 언론사는 그를 붙잡진 못했다. “회사 덕분에 나도 성장했지. 그런데 일하면서 만나는 취재원들은 경력이 쌓일수록 전문성도 생기는데 기자는 오래 해도 그저 전달자에 불과하더라.” 서영이도 다른 기자들처럼 일과 삶의 경계 없이 살았다. 몸과 마음은 지쳐가는데 장기 휴가나 휴직은 불가능했다. 업무는 갈수록 늘었지만 일손 충원은 부족했고 연봉 상승률은 제자리였다.
“기자는 사회초년생이 잠깐 몸담기에 좋은 직업 같아. 나이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잖아. 우리 연차쯤 되면 사양길에 접어든 이 산업에 회의감이 커지는 거지. 계속 여기 있다간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았어.”(서영)
남은 이유? “여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아직 안 떠난 거야”
남아 있는 기자들의 생각도 퇴사자들과 다르지 않다. 9년차 신문기자인 임지은(가명)의 말을 빌리면 “못 떠나는 게 아니라 아직 안 떠난 거다.” 지은이의 목표는 차장 데스크가 되기 전에 퇴사하기다. 종합일간지 소속인 기자 강선아(가명)도 “데스크의 삶은 내가 꿈꾸는 미래가 아니”라고 했다. 이들에게 ‘정치·경제·사회부장-특파원-국장’이 승진코스라는 인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선배들과 달리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언제나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졌다. 연차가 쌓이면서 되레 기자라는 자부심과 보람이 작아졌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9년차 기자 박성민(가명)이 요즘 일하며 느끼는 감정은 공허함이다. 입사 초반엔 열정이 넘쳤고 기사 하나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단독이나 큰 기획 기사를 낼 때면 어깨가 한없이 올라갔다. 하지만 보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다음날이 되면 아무도 안 읽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기사를 써내야 했다. 연차가 쌓이는 만큼 책임감과 업무량은 느는데 체감할만한 보상은 없었다. 수습시절부터 ‘안 됩니다, 못 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일해온 탓에 힘든 티를 낼 수도 없었다.
“1~3년차엔 일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3~6년차 땐 한창 일하는 재미에 빠져있었어. 6년차 이후부터는 그동안 너무 달려와서 쉬고 싶은데 이제 회사가 나를 부리는 재미에 빠진 것 같네? 그렇게 지금까지 온 거야. 또 밖에선 기자가 잘해도 욕먹잖아. 직업적인 만족도가 없으니까 하루하루 공허해.”(성민)
정의감을 가지고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기자가 된 선아도 요즘 들어 이 직업에 의문이 든다. 지금껏 써온 스트레이트, 해설, 박스기사가 과연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매력적인 상품으로 와 닿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언론사에서만 실현할 수 있는 걸까. 의미만 담을 수 있다면 사기업이나 시민단체, 유튜버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럼 밖으로 나가볼까 그런 고민을 해.”(선아)
그저 그런 기자가 되지 않으려고 따로 공부 모임을 하거나 대학원도 진학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뉴스룸 분위기가 나아졌더라도 ‘그럴 시간에 기사나 쓰라’는 인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기자인 친구가 대학원에 합격했는데 부장한테 죄를 고백하듯 보고했다는 거야. 주중에 다니면 눈치 보이니까 대학원이랑 상의해서 모든 수업을 주말로 미룰 수밖에 없었대.”(선아)
종합일간지 기자인 이현우(가명)는 “승진하는 것도 아닌데, 내 돈 내고 휴가도 없이 대학원 간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업종이 또 있을까”라고 했다. “대학원 다니는 우리 연차 기자들 보면 맨날 밤새고 힘들어서 죽으려고 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진학했냐고? 기사 잘 쓰고 싶어서. 취재분야 전문가 만났는데 내가 부족한 게 느껴지니까, 공부해서 일을 잘하고 싶은 거야.”(현우)
기자의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걸 체감하지만, 이 또한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주기적으로 부서를 이동해야 하는 업무특성상 특정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어렵다. 전문기자가 되고픈 마음을 꺾는 분위기도 있다. “이름 앞에 내세울 만한 전문성을 갖고 싶지만 조직에선 그런 기자가 달갑진 않겠지. 데일리 부서에 일이 많은데 특정인만 빼주기 어렵잖아. 결국 스스로 갈아가면서 전문성을 쌓았던 선배들은 퇴사하거나 뉴스룸 안에서도 외부인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더라고.”(선아)
“회사와 결부된 나의 미래 고민… 알고 있을까”
남아 있는 이들이 단지 몇 가지 고민만으로 “언제든 언론계를 떠날 수 있다”고 단언한 건 아니다. 여기선 나의 미래가 보이지 않고, 나아지리란 희망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니어 때는 회사 전반을 우러러보면서 우리 회사는 좀 다를 거라는 기대에 찼었어. 그런데 지금은 못 볼 꼴 다 본 상태잖아. 언론환경, 회사경영, 뉴스룸 간부들과 바로 윗선배들까지.”(지은)
인터뷰에 응한 9년차 현직기자들이 “닮고 싶은 선배가 없다”고 입을 모은 것이 그 단면이다. 방송기자인 김서현(가명)은 “닮고 싶지 않은 선배들만 많다”며 “선배들을 보면 내 미래도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배들은 두 부류야. 업무에 올인하거나 회사와 나를 최대한 분리해서 개인시간 챙기기에 집중하거나. 우리 연차가 지금 이 기로에 서있는 것 같아. 나는 둘 다 아닌 것 같거든. 절충지점을 찾을 수 있을까? 노선을 정하면 마음이 편해질까? 아니면 결국 퇴사가 답인 걸까.”(서현)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사회적으로도 스스로에게도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서 나왔다. 의미 있는 기사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다시, 오래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다.
“일이 많거나 하기 싫어서 스트레스받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잘하고 싶어서 기꺼이 스트레스를 받잖아. 우리가 기자로서 하고 싶은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회사가 지원해주면 좋겠어. 일부라도 학비 지원제도 같은 거 말야. 공부하려는 애들이 오히려 더 안 그만둬. 아니면 평일 저녁에 맘 편히 수업이라도 다닐 수 있게 해주던가.”(현우)
지은이는 간부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연차들이 회사의 미래와 결부된 나의 미래를 얼마나 고민하고 또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고.”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젊은 기자들의 퇴사를 ‘나갈 놈이 나갔다’고 치부할 게 아니라 뉴스룸 내부의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지. 좋은 인력들을 붙잡아둘 대책을 내놔야 할 사람들이 손 놓고 있잖아. 언제까지 밖에선 욕먹고 안에선 위태위태하며 살 거야.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부심 가질 수 있다면 오래 버티는 기자들이 지금보단 많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