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달 26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시민언론 민들레’를 6시간 넘게 압수수색했다. 민들레 직원과 민들레 대표이사에게는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한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받는 혐의(개인정보 보호법 위반)가 적용됐다. 희생자 명단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취재윤리 위반 논란과 별개로 공권력을 동원해 민들레를 압수수색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언론의 취재와 보도에 대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은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과 무관한 자료까지 뒤지려 했고, 민들레의 회계자료까지 압수를 시도했다가 저지당했다고 한다. 민들레 측은 “명단 외에 다른 어떠한 정보도 갖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경찰이 알면서도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민들레의 회계장부에 대한 열람 시도는 후원자들의 면면을 파악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과 무관하게 시민언론 매체의 활동 자체를 탄압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들레에 대한 무리한 압수수색 사례에서 보듯 윤석열 정부 들어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권력기관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각종 고소·고발 사건 수사와 세무조사, 감사와 감찰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기자협회보가 보도한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와 KBS, MBC, YTN, TBS 등에 대한 정부·수사기관 조사 및 수사, 감찰 내역을 보면 모두 23건에 달한다. 취임 9개월째에 이런데, 앞으로 수사와 조사를 명분으로 언론사에 대한 공권력 행사가 얼마나 휘몰아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국세청, 고용노동부, 경찰, 감사원 등이 동원된 MBC에 대한 압박이 대표적인 예다. 국세청은 정기 세무조사를 벌여 지난해 11월 MBC에 520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세무조사가 끝나자 고용노동부는 연차수당 등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벌였다. 경찰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보도와 관련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감사원은 최근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대한 현장조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보수단체가 제기한 국민감사 청구를 이유로 방문진에 서면 답변을 요구한 감사원은 지난달 초부터 현장조사 강행을 추진하고 있다. 감사원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자료수집 개념에 현장조사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했지만, 언론노조 MBC본부는 “감사원이 제시한 부패방지권익위법 규정 어디에도 ‘현장조사’를 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는 없다”며 반발했다. 그러면서 “(현장조사 강행 태도는) MBC 사장 선임을 앞두고 방문진 이사진을 길들이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는 KBS에 대한 장기간 감사로 나타난다. 지난해 8월 말부터 시작한 KBS 사장과 이사진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해를 넘겨 진행 중이다. 애초 감사 기간은 10월 말까지였지만 이달 28일까지 4개월 연장됐다. 반년 넘게 이어지는 ‘먼지떨이’식 감사는 KBS 사장을 바꾸겠다는 권력의 의도에 공정성과 중립성이 생명인 헌법기관이 들러리 섰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방통위에 대한 직접 감찰에 나섰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국무조정실 감찰로도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 강도를 높이고 방문진과 KBS, EBS 이사진 구도를 흔들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서 언론을 장악하려는 속셈이라면 위험천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