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씨와 기자들의 거액 돈거래를 계기로 언론윤리가 다시 많이 거론된다. 많은 언론이 언론윤리의 추락을 개탄하고, 특집 보도도 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혹시 우리는 언론윤리 문제를 너무 ‘사건화’하는 건 아닐까?
언론윤리 문제의 사건화를 걱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종종 언론윤리 문제의 복잡성과 구조적 측면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사실관계가 충분히 드러나기도 전에 평가를 끝내고 금방 어딘가에서 터질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윤리 문제가 어느 언론사, 나아가 어느 언론인에게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 이 사건’에만 매달리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니 이번처럼 어떤 언론사에서 문제가 터지면 다른 언론사는 ‘마치 자신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언론윤리의 추락을 논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당신들도 결백하지 않으니 서로 감싸주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언론윤리 문제는 언론계 전반이 지금보다 더 냉정하고 단호하게 다루어야 한다. 다만 언론윤리 문제를 사건기사 다루듯 하지 말고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했으면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이번 사건을 진지하게 보면 여러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돼 있다. 주요 언론사 고위 간부들이 김만배씨와의 돈거래로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무엇이고, 앞으로 이런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수많은 기자가 대장동 관련자들과 골프를 치고 돈을 받았다는 주장은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청탁금지법 위반일 가능성이 짙은 그런 일은 왜 일어났고 어떻게 방지해야 할지 등등. 깊이 따져 볼 숙제가 즐비하다.
하지만 현업 언론인 단체는 물론 신문협회나 방송협회 같은 책임 있는 단체들이 이런 문제를 정말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전의 다른 사건처럼 그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고 할 때 반짝 타올랐던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논의 불씨가 꺼진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일 터이다.
동료 언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윤리 문제를 사건화, 극화하는 것은 다르다. 채널A에 대한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보도의 경우를 보자. 전현직 채널A 기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1, 2심 판결문을 보면 당시 피해자의 대리인이라는 제보자는 실제로 있지도 않은 로비 리스트가 있다고 채널A 기자들을 속여 검찰로부터 무슨 약속을 받아오게 한다. 부적절한 편지를 보낸 것을 넘어서는 채널A 기자의 여러 행동은 존재하지도 않는 리스트를 미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는 말이다. 정작 피해자는 제보자X와 채널A 기자 사이에 오간 대화도 잘 몰랐다. 이런 내용적 허술함과는 달리 윤리 문제를 다루는 보도로는 이례적으로 MBC는 제보자와 공조해 몰래카메라를 활용한 고발 보도 기법을 동원했다.
폭로성, 고발성의 극적 장치를 사용해서 언론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얼마나 전체 언론윤리 제고에 도움이 될까. 언론윤리 문제는 조금 더 차분하고 끈질기고, 명확한 기준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언론윤리 문제를 모든 언론인이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로 인식해야만 언론윤리의 진정한 내면화가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