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여성노동자 취재하러 한달음에 부산으로… "관심이 곧 진실"

[기자 25시] 유선희 경향신문 뉴콘텐츠팀 기자

지난 8일 오후 부산으로 향하는 KTX 안. 열차가 대전역을 막 지날쯤 기자와 대화를 마무리한 유선희 경향신문 기자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책을 꺼냈다. <혁명의 영점>이라는 제목을 보고 어떤 책인지 물으니 콜센터 노동자를 연구하는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와 인터뷰 중 추천받은 거라고 했다. 혹시나 이번 기사에 녹일 수 있을지 참고하려고, 다른 노동 사안을 취재할 때 도움이 될까 싶어 읽고 있다는 설명이 따라왔다.


이날은 유선희 기자가 한 초등학교 청소 노동자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이었다. 오전에 이미 한차례 인터뷰를 마친 터라 이동 시간 동안 잠시 머리를 비우기 위해 읽는 책이겠거니 했다. ‘갖고 온 책도 노동 사안 관련인 줄 몰랐는데, 워커홀릭인 거 아니냐’는 질문에 예상을 뛰어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근무 시간이기도 하고(웃음)…. 근데 기자님도 그러지 않으세요? 취재하다 보면 욕심 생겨서 쉬는 날에도 보고서나 책들 더 찾아보게 되잖아요.” 공감하는 척 둘러대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노동 문제에 진심이구나.’ 보도를 더 잘하기 위해 책을 읽고 있다는 기자를 더 이상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유 기자는 가끔 줄을 긋기도 하며 부산역에 다다를 때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부산으로 향하는 KTX 안. 유선희 기자가 책 '혁명의 영점'을 읽고 있다. 콜 센터 노동자를 연구하고 있는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에게 추천받은 책이다. 이번 취재에 참고할 점이 있을지 읽어보고 있다고 했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 취재하러 서울에서 부산까지

유선희 기자가 부산에 가는 건 ‘저임금 여성 노동자’ 관련 기획 취재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정책사회부에서 노동·여성을 담당해오던 유 기자는 지난달 9일 뉴콘텐츠팀으로 자리를 옮겨 한 달 넘게 취재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기획을 위해 유 기자는 지금까지 인천, 천안, 아산, 대전 등의 지역에서 톨게이트·콜센터·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났다. 지난 8일 저임금 여성 노동자 취재를 해오고 있는 유 기자와 하루를 동행하며 사회의 낮은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유 기자의 취재는 오전 10시 경향신문 사옥에서 시작됐다. 약속 시간에 경향신문 정문 앞으로 마중 나온 그는 이런 문도 있었나 싶은 장소로 이끌더니 몇 개의 계단을 올라 회의실 B로 안내했다. 여기서 미리 취재를 준비하고 있던 유 기자의 자리엔 노트북과 서류뭉치, 커피잔 등이 놓여 있었다. 그는 이승효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 조직부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될 거라고 했다. 이번 취재 외에도 여러 번 연락한 적 있지만, 기자가 이승효 조직부장을 직접 만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지난주에 방과 후 돌봄 교사를 만나 얘길 들었거든요. 이번엔 학교비정규직을 담당하는 노조를 통해 돌봄 교사 노동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을 들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추가로 자료 요청할 것도 있고, 만나서 더 상세하게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 부장이 도착하며 곧바로 시작된 인터뷰는 1시간여 동안 이뤄졌다. 유 기자는 미리 받은 자료를 보여주며 더 상세히 분석한 자료는 없는지 확인하고, 질문을 이어갔다. 시간이 흘러 ‘여성 노동자 처우와 관련해 이번 기사에 집중적으로 다뤘으면 하는 게 있는지’ 묻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이 부장은 답변을 하고선 “항상 관심 가져줘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후에도 인터뷰는 쉬이 끝나지 않았다. 서로 마무리 인사를 나누다가도 보도 시점과 기사 취지에 대해 설명하니 이 부장은 “서비스연맹엔 기자님이 관심 가질만한 노동자들이 많다”며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사례 외에도 요양보호사, 콜센터 노동자 등이 겪은 부당한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유 기자는 추가 질문을 이어가며 필요한 취재원 연락처와 자료를 요청했다. 이 부장을 배웅하고 돌아온 유 기자는 “이런 게 참 좋다. 직접 듣는 건 당연히 통화보다 도움이 되고,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확실히 있는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유선희 경향신문 기자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 기획 취재를 위해 지난 8일 부산을 찾아 초등학교 청소 노동자인 이지영(가명)씨를 만났다. 1시간30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은 자료를 살펴보며 대화를 나눴다. 사진 속 자료는 블러 처리.


오전 인터뷰를 마치니 어느덧 11시10분께,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유 기자는 정책사회부에서 일할 때 주로 출입하던 여성가족부 사람들을 만나러 신문로에 있는 식사 장소로 향했다. 걸어가는 와중에도 그는 틈틈이 취재원과 통화를 이어갔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인데, 이번 기획 취재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도 들어가 도로공사의 입장 등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통화 중에도 중간중간 약도를 살피며 걷던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이따 서울역에서 보자”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인터뷰 장소에 가기 위해 서울역 플랫폼 앞에서 유 기자를 다시 만난 시간은 오후 12시45분. 그의 손에는 캔 커피 하나와 부산행 여정을 함께할 기자에게 건넬 생수가 들려있었다. 오후 1시 출발 기차를 타기 위해 취재원과 식사만 하고 급하게 오는 길이라고 했다. “카페인 중독이라, 커피는 포기할 수가 없어서요.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꼭 세 번은 마시는 것 같아요(웃음).”

웃음과 울음이 공존한 인터뷰 현장

“어서 오세요. 여긴 우리 사무처장님. 저희 환경 미화 선생님 담당하시는 분.” “아이 예쁘시네! 차 한 잔 갖다 드릴게예.”


약 3시간이 걸려 도착한 부산진구에 위치한 학비노조 부산지부 사무실. 부산역과 연결된 지하철역 입구를 찾는데 애먹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었다. 내심 조급해하던 유 기자를 분홍 조끼를 입은 여성들이 반갑게 맞았다. 오후 인터뷰 상대인 이지영(가명)씨 그리고 학비노조 활동가들이었다. 사뭇 진지했던 오전 인터뷰 때와는 또 다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들이 유독 서로 반가워한 건 이유가 있었다. 유 기자와 이지영씨는 이번 ‘저임금 여성 노동자’ 취재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지난해 11월 학비노조 집담회에 나온 이씨의 사연에 주목한 유 기자가 연락처를 알아내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유 기자는 그동안 이씨가 초등학교 청소 노동자로 일하며 털어놓았던 문제들을 이제라도 보도할 수 있어 “마음의 부채를 덜었다”고 말했다.

학교 청소 노동자 이지영(가명)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유선희 기자가 사진 촬영에 나서고 있는 모습.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은 자료를 들여다보며 학교 청소 노동자 처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대화를 나눴다. 이씨는 “노조에 가입하고 나도 학교에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당차게 말하다가도, 열악한 처우로 힘들게 생계를 꾸려야 했던 일들을 떠올릴 땐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기도 했다.


오후 6시20분, 1시간30여분의 인터뷰를 마치며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이씨는 기차표는 예매했는지, 오는 길은 어렵지 않았는지 물었다. “조심히 가라”는 말과 함께 그는 엘리베이터에 타는 유 기자에게 마지막 당부를 했다. “예쁘게 잘해 주세요!”

노동에 진심인 기자

유 기자에게 이씨와의 인터뷰가 어땠는지 물었다. “저임금 노동과 관련된 취재를 하다 보면 오늘처럼 당사자들의 서러움, 억울함을 같이 느끼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질문을 이어나가야 하는 상황이 항상 어렵더라고요. 사실 인터뷰를 통해 나온 건 그분들이 겪었던 일의 극히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걸 어떻게 잘 담아낼지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됐고요. 선생님(이씨)의 몸에 새겨진 노동의 흔적을 발견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2018년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유선희 기자는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를 만났다. 그는 누구보다 직접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찾아다니는 기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코로나지원금 대상에 봉제 노동자가 빠져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다큐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시사회 현장에 “무작정” 찾아간 일도 있었다.


동료의 산재를 목격한 이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생존 노동자’들도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오래전 취재 현장에서 이들의 사례를 접한 후 혼자서 알음알음 알아봤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평택 SPC 공장에서 사망 사고가 일어난 날 노동자가 투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3개월의 취재 끝에 지난 1월 나온 <생존 노동자 트라우마> 기획은 유 기자가 전남 장성, 경남 창원 등 여러 사업장을 찾아 생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결과물이다.


“보도 이후 제도 변화와 같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면 가장 좋겠지만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는 당사자들의 피드백을 받으면 더 뿌듯하고 기뻐요. 더 이상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좌절 속에서도 용기를 내준 덕분에 기사가 나올 수 있던 거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문제 해결을 바라보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물연대 총파업, 평택 SPC 공장 청년 노동자 사망 사고, 중대재해처벌법 첫 시행 등 많은 노동 현안이 터졌던 지난해. 그 현장의 중심에 유 기자가 있었다. 그럼에도 사건이 연속해서 터지며 잊혀선 안 될 중요한 노동 문제를 놓친 건 아닌지 고민도 들었다고 한다.


“반도체 노동자 산재 기획을 보도한 이후 후속 보도를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못하고 있어요. 놓치고 싶지 않는 사안인데, 워낙 노동 현안이 방대해 새로운 사건이 터지면 소홀해지게 되더라고요. 이 정도로만 해도 될지 마음 속 부채가 항상 남아있어요.”

“‘관심이 진실’이란 말 항상 기억에 남아”

취재를 마치고 서울역으로 돌아오니 거의 밤 11시. 그야말로 “인터뷰한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더 길었던 취재”였다. 이번 기획을 마무리하면 유 기자는 뉴콘텐츠팀에서 본격적으로 젠더 콘텐츠 생산을 담당하게 된다. 지난 부서에서도 취재해 온 여성 문제를 다루는 건 좋은데 문제는 “유튜브 콘텐츠라는 점”이다. 영상에 직접 출연해야 할 것 같다며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했다.


집으로 향하려는 기자를 붙잡고 ‘어떤 기자가 되고 싶냐’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는 어느 세월호 유가족이 말한 ‘관심이 진실이다’라는 표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진실이라는 말을 표현하는 어떤 단어들보다 더 와 닿았어요. 진짜 많은 일들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뭔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거든요. 주목받지 못한 사안이 정말로 관심을 얻어야 할 때도 있고요. 독자들이 그런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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