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룩셈부르크 등 서구 국가에서 언론지원 제도 차원의 정부 보조금 지급 시 '기자 수'를 고려하거나 '개별 언론인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포함한 개혁안을 내놓으며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허위정보와 기후위기 등 현안과 관련해 "언론매체와 언론인의 수를 최대한 보존해야 정보 다원주의와 퀄리티 정보 생산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있다. 생태적 전환, 전문성, 탈경계 등 키워드로 대표되는 해외 언론지원 제도의 변화를 단서로, 국내 언론지원 제도에 대한 진단과 정책 방향에 대한 면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최근 미디어정책리포트 ‘해외 언론지원 제도의 새로운 키워드: 생태적 전환, 전문성, 탈경계’(진민정 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를 통해 언론지원 제도 개혁을 단행한 프랑스와 룩셈부르크의 변화를 소개했다. 언론재단은 지난달 28일 보도자료에서 코로나19와 거대 플랫폼의 디지털 광고 독식으로 큰 타격을 입은 두 나라의 언론에서 비용절감을 위한 전문직 기자 해고, 광고성 기사 증가 등이 벌어진 현실을 지적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허위 정보, 오정보의 확산으로 언론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으나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한 역설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존 체계의 개혁을 단행한 것”이라 배경을 전했다.
프랑스는 최근 몇 년 새 언론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온 가운데 2015년 지원대상을 확대했다. 정치 및 종합정보일간지 중심의 지원에서 그 대상을 모든 정기간행물, 지식과 학문을 보급하는 인터넷 매체로까지 넓힌 것. 배경엔 정치 및 종합정보 일간지 수의 지속적인 감소가 있었다. 언론사 창간이나 후원 혹은 특별한 이벤트를 위한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개인에 대한 소득세 감면(2015년), 언론의 혁신과 실험 지속을 돕는 신생매체 창업 및 혁신 지원 지금(2016년), 미디어교육 동참 언론사 지원(2019년), 효율적인 신문 배급 시스템 마련을 위한 법 개정(2019년) 등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한 지원책이 마련됐다. 2023년 기준 프랑스 언론 지원액은 직·간접지원을 모두 합해 5억2850만유로(약 7285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언론의 산업적 위기는 개선되지 않았고 지원책이 거대 언론사 잇속을 챙기는 데 일조하고, 저널리즘 작업이 아닌 언론사 생존에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이 나오며 ‘저널리즘 퀄리티를 높이고 뉴스룸 구성원의 직업적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나온 프로그램 중 하나가 ‘프리랜서 기자를 위한 특별 지원’이다. 디지털 미디어 출현 후 저널리즘 관행 변화,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소득 수준 하락 등으로 이탈하는 언론인이 늘던 차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정책으로 프리랜서 기자는 큰 피해를 봤는데 이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한 것이다. 특별지원 명목으로 프랑스 정부는 2021~2022년 직업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는 프리랜서 기자들에게 총 2950만 유로(약 410억원)을 지원했다. 2022년 자료에 따르면, 기자증을 가진 언론인 중 정규직 기자와 프리랜서 기자 비율은 3대1 가량이고, 정규직 기자는 감소하는 반면 프리랜서 기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탄소중립 시대에 맞춰 ‘언론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기금’이 마련된 것도 유념할만하다. 이는 언론 분야에서 생태발자국 감소를 위해 언론 관련 모든 행위자가 수행하는 연구, 개발 및 혁신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프랑스 정부는 2021~2023년 기존 지원기금에 이 예산 명목으로 연간 800만 유로를 추가 편성했다. 예컨대 인쇄 및 온라인 신문의 산업, 디지털, 조직적 관행에 대한 지속 가능한 발전 측면의 연구, 언론 영역의 생태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혁신적인 실험, 생태적 전환을 위한 투자 등이 기금 지원대상이 된다. 총 비용은 2만 유로 이상이어야 하며 기후 변화, 자원 소비 및 폐기물 생산 감소, 건강, 생물다양성 등 한 분야에서 언론의 생태발자국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
언론지원 제도 기준을 강화하며 저널리스트를 '정보처리자'가 대체하는 행태에 제동을 건 것도 의미있게 볼 지점이다. 수많은 언론사 저널리스트들이 해고되고 이 자리를 조회수와 클릭수를 위한 ‘정보처리자’들의 '우라까이' 기사 등이 대체하며 “전문직 기자의 수는 줄어들고, 전문직 윤리에 저널리즘은 퇴색하며 언론 기사에 대한 신뢰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정보 콘텐츠의 생산이 전문직 기사로 구성된 뉴스룸에서 이뤄져야 하고, 정보의 수집 및 취재, 정보 검증, 기사 형식에서 전문성이 드러날 것’을 자격요건으로 한 우편요금 및 세금 감면 혜택 대상 변화가 제시됐다. 아울러 언론사가 발행하는 광고를 식별할수 있도록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투명성 의무에 따라 “언론사 편집에 포함된 모든 광고기사는 ‘광고’ 또는 ‘보도 자료’임이 명시적으로 표시되어야 한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6000유로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 공적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언론재단은 보고서에서 “프랑스 정부는 언론사 지원 신청 자격 조건으로 ‘전문직 기자의 존재’와 ‘광고와 기사의 명확한 구분’을 언론의 상업화에 대한 일종의 제동장치로 도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2월 언론 독립성 강화 법안에 따라 지원을 받는 언론사는 매출의 최소 35%를 인건비에 투자해야 하며, 언론인이 전체 구성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조건도 충족해야 하는 상태다.
룩셈부르크 역시 2021년 7월 의회가 언론지원법을 제정하며 큰 폭의 변화를 감행했다.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다양성과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언론지원 혜택의 자격 기준을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 법은 정부 보조금 지급 기준을 신문의 발행면수가 아니라 편집국에 고용된 정규직 언론인 수로 변경했다. 저널리즘 콘텐츠의 품질은 전문직 기자 수에 달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지원 대상을 룩셈부르크 공식언어(룩셈부르크어, 프랑스어, 독일어) 외의 다른 언어로 된 뉴스까지 확대했으며, 월간 잡지 및 무료 간행물까지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기존 지원제도 대상이 아니었던 신생매체와 시민미디어도 특정 조건하에서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여기엔 “언론사에서 뉴스콘텐츠를 생산 및 편집하는 정규직에 해당하는 전문직 기자”에게 정부 보조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식까지 포함됐다. 언론재단은 보고서에서 룩셈부르크 언론평의회 및 언론단체들의 반응을 전하며 “이번 개혁이 언론출판 간행물의 발행 방식, 비즈니스 모델, 발행 간격, 발행 언어 측면에서 언론지원대상을 크게 확장하고, 미디어에 종사하는 전문직 언론인의 작업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라며 “다양한 저널리즘 행위자가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정보 다원주의 수호에 일조할 것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적었다.
언론재단은 “언론지원 시스템이 언론의 독립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가 언론지원에 상당한 예산을 편성하고 저널리즘에 투자하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언론매체와 언론인의 수를 최대한 보존해야 정보 다원주의와 퀄리티 정보 생산이 가능하고, 그래야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확신 떄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상당히 다른 저널리즘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들의 언론지원 개혁이 다소 이상적으로 다가온다”면서도 “다만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언론인들이 민주주의를 위한 공적 서비스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의 효율성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우리에게도 시급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