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KBS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TV 수신료 징수방식 개선 방안’에 대한 여론 수렴에 나섰다. 현재 수신료는 전기요금과 함께 일괄 징수한다. 대통령실은 현행 징수체계가 “소비자의 선택권과 수신료 납부거부권 행사가 제한된다는 지적”을 국민제안 홈페이지에 실었다. 감사원은 14일 KBS 감사 결과를 내놨다. KBS가 미등록 TV에 수신료를 부당 징수했다는 것이다. KBS는 감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심의 요청 등 후속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수신료 분리징수의 신호탄이다.
한국방송공사(KBS)는 방송법이 규정한 국가기간방송이다. 주요 재원은 수신료로, TV수상기를 소지한 자가 수상기를 등록하고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다. 수신료는 1981년 2500원으로 정해진 이후 고정돼 1994년부터는 한전이 위탁받아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해왔다. KBS는 안정적인 재원인 수신료를 기반으로 광고 수입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운영하는 대신, 더 높은 공정성과 공익성을 요구받았다. 법원이 수신료는 TV를 소지하고 있다면 누구나 납부해야 하는 ‘특별부담금’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본 이유다.
징수방안에 대한 대안 없이 분리징수를 강행한다면 수신료 수입은 급감할 것이다. 시청자가 직접 TV수상기를 등록하고 수신료를 자발적으로 납부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KBS가 직접 수신료를 징수하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수신료 폐지로 이어질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하지만 공영방송인 KBS가 문을 닫을 수는 없다.
결국 KBS는 다른 재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 보조금 형태로 재원을 충당하게 된다면 권력 비판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광고에 의존하게 된다면 재난방송 등 공익 프로그램은 불가피하게 줄여야 할 것이다. 방송법이 KBS에 요구하는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 정착’은 더욱 공허한 외침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분리징수 움직임에서 이런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TV를 보지 않으면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단편적인 접근만 보일 뿐이다.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송출되는 공영방송은 일종의 공공재다. 문제가 있다면 사회가 함께 숙고하고 가꿔나가야 할 자원인 셈이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가구당 수신료를 부과하도록 징수체계를 개편한 이유다.
만약 공영방송이 공적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밥줄을 잡고 흔들 것이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 등 근본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정치권은 겉으로는 공영방송 수술을 외치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공영방송을 이용해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야당일 때 외치던 공영방송 사장 선임구조 개편은 여당이 되는 순간 여지없이 우선순위에서 제외됐다.
KBS 조직원들은 이번 사태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대통령실의 국민제안이 압도적 찬성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KBS가 지금까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KBS기자협회 등 8개 직능단체는 13일 공동성명에서 “수신료를 공적 책임을 지키기 위한 프로그램 제작에 제대로 써 왔는지 뼈아프게 되돌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공영방송인이라면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도록 끊임없이 쇄신하고 고민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래 공적 재원을 바탕으로 한 언론은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시의 TBS 예산 삭감, YTN 지분 매각에 이어 KBS의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까지 시작됐다. 공영 언론의 붕괴가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돌아갈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