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4·19혁명 기념사는 놀라웠다. 그 일부를 그대로 옮기자면 “허위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거짓 선동과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한다면 이런 거짓과 위장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까지 덧붙였다.
이는 ‘탈진실’의 시대 중 병리적 증상 중 하나로, 탈진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나 세력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을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 현상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탈진실 현상을 세계적 차원에서 주도했던 도널드 트럼프는 임기 동안 3만573건, 하루 평균 21건의 거짓말을 했다. 이런 그가 임기 내내 자신에게 비판적인 뉴스를 모두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였다. 재선에 실패한 이후 자신이 설립하겠다고 선언한 소셜네트워크에는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이란 이름을 붙였다.
돌이켜 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바이든/날리면’ 논란으로 가장 큰 규모의 탈진실 현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뜻하지 않게 전 국민이 우리말 듣기 시험을 보게 됐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 여론조사에 드러난 ‘바이든’으로 들은 사람과 ‘날리면’으로 들은 사람의 비율은 정확히 당시의 대통령 지지율과 유사했다. 이 논란의 가운데서 대통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만 남긴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 대통령의 4·19 기념사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우리 언론에 대한 불신이다. 기자의 불손한 태도를 명분 삼아 중단된 출근길 약식회견, 대통령 비속어 발언을 최초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 뉴스포털이 여론조작을 하고 있다는 비판,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에 대한 고발 등은 이런 불신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은 우리 언론과의 인터뷰는 피하고 해외 언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관련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제3자 변제 해법도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놓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과 대만 관련 발언과 같이 중요한 안보에 관한 입장은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우리 국민은 국가의 역사 및 안보와 얽힌 중요한 결정을 모두 외신을 통해 먼저 알게 되었다.
언론이 어떤 비판을 받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의 최전선에 서 있는 중요한 공적 행위자다. 언론이 권력이 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며 전달하는 통로를 잃는다면 국민은 공적 사안에 대해 신뢰할만한 정보 없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된다. <리바이어던>에서 홉스는 이렇게 신뢰 없이 자의적 판단이 난무하는 상태를 ‘자연상태’라 불렀다.
지난 2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과 깜짝 간담회를 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기자들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 개최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대답은 이랬다. “여러분과 이렇게 맥주나 한잔하면서 얘기하는 기자간담회면 모르겠는데, 자료를 쫙 주고서 잘난 척하는 행사는 국민들 앞에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대통령에게 우리 언론은 이제 맥주나 한잔하는 사이가 됐다. 이런 사이로 남을 것인지 이제 언론이 결정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