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가 전쟁 지역에 대한 자유로운 취재보도 활동을 제약하는 현행 여권법의 개선을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 프리랜서인 장진영 사진작가가 외교부 장관 허가 없이 여행금지국가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는 이유로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사건이 발단이 됐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 언론인이 취재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 현실에 언론계는 반발했다. 전국언론노조 등 27개 언론·시민단체는 23일 장 작가가 법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결정을 지지하며 처벌의 근거가 된 여권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도 신청했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전쟁 지역 취재를 제한하는 현행 여권법은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언론계가 느끼는 여권법의 문제는 사실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취재 자유와 국민 알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점이 우선 지적된다. 일례로 지난해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긴박한 순간 국내 언론인들은 그저 뉴스룸에 앉아 현장의 외신기자들이 전하는 보도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열흘 전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면서 현장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제정세를 바꿀 대형사건이 터졌는데도 우리 국민은 한 달 가까이 우리 시각을 담은 생생한 현장 기사 한 줄 읽지 못한 채 외신을 인용한 보도에 만족해야 했다.
3월18일에야 KBS 등이 ‘예외적 여권사용’ 허락을 받아 우크라이나로 향했지만 취재진은 전선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2박 3일간만 머물러야 했다. 심층보도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4월 이후 5일·6명 이내, 2주·20명 이내 등으로 체류 기간 및 인원이 늘어났지만 때늦은 처사였다. 이런 허가조차 외교부 출입 언론사만 가능했다는 점에서 차별 문제도 거론됐다. 장 작가는 공익을 목적으로 우크라이나에 갔지만 대형 언론사의 정규직 언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예외적 여권사용’ 대상이 되지 못했다.
특히 우리는 2007년 여권법 개정 후 한국의 전쟁·국제 보도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확인한 우리의 전쟁 보도 역량은 20년 전 이라크 전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15년 간 분쟁 지역으로 기자를 파견하는 일이 급격히 줄었고 그러면서 장기간 쌓아올렸던 취재 네트워크나 역량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
물론 국제 보도의 질 저하는 여권법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급변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주요 언론사가 여권법을 핑계 삼아 위험과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전쟁 보도에 대한 비중을 줄여왔던 것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아울러 자국민 안전과 보호를 우선해야 하는 정부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사실 여권법이 목적하는 생명의 가치와 언론계가 요구하는 자유의 가치는 양쪽 모두 소중하며 사람마다 또는 판단의 순간마다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번에야말로 여권법의 슬기로운 적용 방안에 대해 정부와 언론계, 국민이 함께 검토했으면 한다. 취재보도의 자유는 물론 생계를 위해 여행금지국가에 체류한 교민들을 불법체류자로, 의용군에 참전한 뜻있는 청년들을 전과자로 만들었던 법의 부작용도 고민하길 바란다.
돌이켜보면 현행 여권법은 샘물교회 피랍 사건 충격의 여파 속에서 개정된 탓에 개인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 경향이 크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부터라도 다시 논의를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