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제기땐 침묵 검찰 수사 뒤엔 호들갑
[언론에 할 말 있다]재벌 불법혐의 보도
언론에 할말있다 | 입력
2003.02.26 00:00:00
박근용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
언론은 경제상황과 산업동향, 그리고 기업활동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임무를 하는 동시에, 경제정의가 실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기업활동이 일반 국민과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 그리고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치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하는 임무도 가지고 있다. 정치권력에 대한 동향보도와 함께 감시와 비판기능을 언론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이런 역할을 다해왔다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 기업감시 역할을 해온 시민단체 상근자로서 그렇지 못한 일면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최근 부쩍 증가한 언론의 재벌관련 불법혐의에 대한 보도태도를 살펴보자. SK그룹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다른 재벌그룹들의 불법혐의 내용을 묻는 언론의 취재는 뜨거웠다.
그런데 SK그룹에 대한 형사고발은 이미 지난 1월에 했다. 그리고 작년 10월부터 이 문제는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이 사건은 그다지 보도되지 않았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라고는 검찰이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물론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은 중대한 보도계기이다. 하지만 언론이 감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면, 공권력이 발동되기 이전에 이미 문제제기가 있었다면 그때부터 충실하게 취재를 했을 것이라고 본다.
만약 검찰이 과거처럼 이번 사건을 대충 수사하고 넘어갔다면, 언론은 과연 이 SK그룹의 불법혐의를 충실히 보도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그래오지 않았다. 검찰이 대충 수사했다고 해서 기업의 불법행위, 경제정의 훼손사실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언론은 검찰이 확인해주고 나서야 새로운 사실이 나타난 것처럼 뒤쫓아가기에 바빴다.
이를 정치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보도와 비교해보자. 정치권 비리의혹이 불거졌을 때 검찰이 수사한 이후에 언론은 보도하는가? 그렇지 않다. 신빙성 있는 근거가 나오기 전에 이미 언론은 사실처럼 단정지으며 보도한다. 하지만 왜 기업의 불법비리, 특히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재벌그룹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뒷북치기식으로 하는가? SK그룹 사건뿐만 아니다. 두산그룹 BW발행 문제, 한화그룹 분식회계 문제, 삼성SDS 배임죄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 등 언론이 감시하고 비판할 문제들은 무수히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문제도 언론은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정치권에 대한비리와 경제계의 비리, 두 쪽의 비리에 대한 검찰 등의 대응태도를 언론이 달리 취급해서 보도할 이유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