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폭주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4일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 건의안과 정미정 EBS 이사 해임안을 의결했다. 같은 날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에 대한 해임 청문을 진행했고, 김기중 방문진 이사를 해임하겠다며 사전통지했다. 이 모든 게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폭거는 KBS, 방문진, EBS 야권추천 이사들을 방통위 앞에 모이게 했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는 2023년 8월을 윤석열 정부가 공영방송을 짓밟고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유린한 달로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두 이사장에 대한 해임 사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방통위가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 사유의 하나로 든 법인카드 부정사용 의혹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이고 그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의 경우 감사원 소환 조사와 방통위의 방문진 검사·감독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해임 절차를 밟고 있다. 법과 원칙, 절차를 뒤집고 허물면서 다짜고짜 해임, 또 해임을 밀어붙이는 폭력과 야만이 난무한다.
중심엔 여권 추천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상인 위원이 있다. 한때는 기자였고, 법관이었던 그들은 자신들이 역사에 무엇을 범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로지 권력의 충견이 되어 야권 추천 김현 위원을 배제하고, 두 사람만 참석한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어 의사봉을 두들기고 있다. 방통위는 5월 말 한상혁 전 위원장이 면직된 이후 상임위원 3인 체제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석 달 사이에 수신료 분리징수 등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들이 마구잡이로 이뤄졌다.
이 막장극의 종착점은 어디로 향할까. 공영방송 이사진을 친여 구도로 재편해 KBS와 MBC 사장을 갈아치우는 방식으로 끝나진 않을 것 같다. 공영방송 장악에서 나아가 인적·물적 토대를 허물어 공영방송 시스템을 해체하려는 음모를 가동할 수도 있다. 대통령실 권고 한 달 만에 시행령 개정으로 현실화한 TV수신료 분리징수 사례는 KBS 2TV 재허가 심사 탈락, MBC 민영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은 찾아볼 수 없는 윤석열 정부라 더 우려스럽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김효재 직무대행의 뒤치다꺼리만 하진 않을 것이다. ‘언론장악 기술자’라는 네이밍이 따라다니는 그의 향후 행보에 음산한 통제와 장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공산당 신문·방송’ 발언에서 보듯 그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유령을 민주주의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에 느닷없이 출몰시켰다. 대통령은 나아가 ‘공산전체주의’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15일 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했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언론과 시민사회에 ‘공산당 기관지’ 딱지를 붙여 억누르고,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보도와 여론은 ‘가짜뉴스’로 몰아 탄압하겠다는 신호탄이다. 그리고 모든 언론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밥줄을 끊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커뮤니케이션은 종이신문과 방송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를 마주함에도 통제와 장악이 거론되는 현실이 참담하다. 기자협회보가 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을 맞아 기자 9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언론소통을 부정 평가하는 기자가 85.1%에 달했다. 윤 정부는 부정 평가 여론이 압도적인 이유를 부디 곱씹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