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정책을 결정하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방송내용의 공정성을 심의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독단적이고 탈법적인 행보가 우려스럽다. 방통위와 방심위는 위원의 구성이나 의사결정 과정, 운영 방식에서 합의제를 지향한다.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결정을 하라는 것이 기구 설립 취지다. 자칫 정치적인 심의가 이뤄질 경우 표현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방심위의 모습은 이런 본분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으로 비친다. 비판 여론을 봉쇄하고 언론 통제에 나서려는 정권의 손발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지금까지의 운영관행이나 절차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겠다는 태도다.
정연주 전 위원장을 청문절차도 없이 해촉시키고, 국민권익위원회가 이해충돌법 위반사항을 발표한 지 3시간 만에 정민영 전 위원을 해촉시키는 등 야권몫의 상임위원을 속도전식으로 ‘제거’한 방심위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다. 숙의가 필수적인 정책결정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최근 여권은 뉴스타파의 신학림·김만배 녹취록 보도를 이른바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로 규정하고, 이를 ‘대선공작 게이트’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행태인데 이런 시도에 방심위는 이심전심 손발을 맞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논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MB정부 때 언론인 대량 해직사태와 무관하지 않은 류희림 새 위원장의 운신부터 문제적이다. 그는 위원장이 통상 광고심의소위원회나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활동해온 관례를 무시하고 방송소위를 택했다. 지금까지 정치적 쟁점이 많은 방송소위에 위원장이 가지 않은 건, 공정성을 담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공정성을 보여주겠다는 형식적인 노력조차 포기하더니 곧바로 소위원회를 열어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보도한 KBS와 YTN, JTBC 등에 대해 의견진술을 듣고 역대 최고 징계인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다. 인용보도에 대한 징계규정도 명확하지 않고 징계 사례조차 없는데도, 이를 결정한 건 KBS, MBC 등의 신뢰도를 저하시키려는 정치적 낙인찍기라는 게 많은 언론학자들의 견해다.
방심위 여당 추천 위원들은 지상파·종편·보도채널 등에 시사·보도·선거방송 관련 가이드라인 제출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자는 제안도 했다. 심의에 필요한 특정사안 관련 자료가 아닌 일반적 가이드라인을 요청했는데 이는 분명한 월권이다. 명분은 가짜뉴스 척결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년 총선 때까지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봉쇄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면 이런 독단적이고 탈법적인 행보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동관 체제’ 방통위의 무소불위적 행태는 말할 것도 없다. 방통위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야권 추천 상임위원도 없고, 5명의 위원 중 대통령이 지명한 위원장과 부위원장만 있는 상황이다. 불가피하게 2인 체제가 만들어졌다면 논쟁적이고 예민한 사안들에 대한 결정은 미루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이동관 체제가 출범한 뒤에도 방통위는 ‘남의 편’ 공영방송 이사를 쫓아내는데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주 법원이 ‘임기를 보장한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의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는데도, 방통위는 18일 똑같은 사유로 야권이 추천한 김기중 이사를 해임했다. 방통위는 사회적 합의도 법원 결정도 무시하는 법외의 기구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통위의 구성,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를 두고 홍역을 겪는 만큼 이번 기회에 방통위의 인적구성에 정파성을 배제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