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정보의 억지가 제1의 과제로 표방되는 사회라면 더욱, 검증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언론의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활성화돼야 한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정기학술대회 긴급세션 발표에서 “언론계-학계-플랫폼 기업이 유권자와 정보 소비자들의 공적 사안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6년 넘게 성장시켜온 협력 모델에서 플랫폼 기업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탈한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정치권의 ‘좌편향’ 낙인찍기와 플랫폼에 대한 압박 가운데 네이버는 지난 8월 SNU팩트체크에 대한 연간 10억원 지원을 중단했다. 국내 대표 팩트체크 플랫폼의 인턴십, 팩트체킹 보도지원 등 주요사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마련된 세션이었다.
2017년 출범 후 SNU팩트체크는 국내 팩트체크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용자에겐 매체 성향과 무관하게 제휴 언론사 32곳이 독자적으로 올린 팩트체크 기사를 한 데서 접하는 플랫폼으로, 언론사엔 상호간 콘텐츠 품질을 다루는 자율적인 경쟁의 장으로 기능했다. 이날 발표에선 SNU팩트체크 출범 이후 국내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양적·질적 성장을 보여주는 여러 지표도 제시됐다. 세계 팩트체커들의 연례 행사 ‘글로벌 팩트’를 지난 6월 서울에 유치하며 개별 플랫폼을 넘어 국내외 팩트체크 저널리즘 전반에 영향을 미쳐왔지만 정부여당의 ‘가짜뉴스 전쟁’ 후 뜻밖의 위기를 마주했다.
정 센터장은 “제휴 언론사 중엔 보수·진보 계열로 분류되는 언론사들이 포괄돼 있다. 각 사의 정치적 지향 차이에도 불구하고 협의체의 논의사항은 대개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민주화 이후 진영화된 한국 언론에서 드문 성과”라고 평했다. ‘비당파성’ 원칙을 견지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편집권에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각 제휴사가 올린 팩트체크 콘텐츠의 질적 차이를 조정하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고도 했다. 다만 “서로 다른 정치적 세력에 대한 검증에서 양적 균형을 취하는 것은 불편부당성이라고 할 수 없다. 팩트체크는 ‘진실 찾기’를 계승하는 것이고 이 전통은 거짓 균형을 거부한다”고 덧붙였다.
이 플랫폼의 위기는 자칫 국내 팩트체크 저널리즘 전반의 위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날 학자, 기자들이 참석한 토론회에서 이어졌다. 두번째 발제를 한 박기묵 CBS노컷뉴스 기자는 “양질의 팩트체크 뉴스를 보도하는 것은 기획 기사를 보도하는 것에 준할 만큼 인력과 시간을 많이 사용하고 이에 외부 공격은 물론 언론사 내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며 “인턴, 취재지원 사업 등이 힘든 여건에서도 팩트체크를 할 수 있는 동력이었는데 사업을 멈추면 제휴사들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팩트체크 기사가 기자, 언론사 내부에 주는 동력으로서 가치도 거론됐다. 홍혜영 TV조선 기자는 “출입처에 따라 같은 사안에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해관계 고려 없이 쓴다는 게 주는 자유가 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검증을 하며 ‘나는 기자였지’라고 느끼는 건 중요한 부분”이라며 “지난 대선 때 각 당에서 상대 후보 발언을 팩트체킹했다며 기자들에게 자료를 보냈는데 정당의 생각을 ‘검증’이라 하더라. 이것마저 오염되면 안 된다고 본다. 기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팩트체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웅 연합뉴스 기자도 “20년 동안 쓴 기사와 (팩트체크를 한) 2년 기사에 들인 노력, 애착 차이가 많이 난다. (중략) 토요일 아침 낸 기사에 ‘그냥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신간을 본 것 같다’는 댓글을 보며 기뻤던 적이 있다. 기사 정보량, 심도에 대한 반응이 아닐까”라며 “팩트체크 취재방식과 사고가 지금은 특별한 장르, 이벤트가 되고 있다. 일반 기사 방식으로 확산하기 위한 고민과 관심,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정 센터장은 세션 후 향후 행보를 묻는 질문에 “지금 1순위는 대체 재원 마련이다.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유일한 방침으로 두고 국내외 가리지 않고 (후원처를) 찾으려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