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신고와 화려한 퇴사

[언론 다시보기]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대표 노무사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대표 노무사

“조사 결과 신고인이 신고한 내용 모두 직장 내 괴롭힘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럼 피신고인은 억울해서 어떻게 하나요?”, “거짓 신고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응 방법은 없나요?”, “조용히 퇴사하지 않고 꼭 괴롭힘 신고를 하면서 티를 내야 했을까요?”


최근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조사 실무 강의장에서 종종 접했던 질문들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4년을 넘기면서 강의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도 다양해졌다. 법 시행 초기 전 직원 대상 예방 교육이 주류를 이뤘다면 요즘엔 ‘고충 상담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접수 및 사건 처리를 담당하는 실무자’ 등으로부터 교육 요청이 활발해졌다.


문제는 일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이 지속적으로 부각하고 있지만 신고하지 못하는 이들의 비중은 여전히 높고, 설령 신고하더라도 신고인을 향한 조직의 대처와 배려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최근 사단법인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직장인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분위기를 여실히 반영한다. 지난해 6월 조사에서는 직장인 29.6%가 ‘최근 1년 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나 올해 3월, 6월 조사에서는 괴롭힘 경험율이 각각 30.1%, 33.3%를 기록했다. 급기야 지난 9월 조사에서는 직장인 35.9%가 ‘최근 1년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해당 조사에서 주목할 수치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10명 중 1명만이 신고했다’는 것이다. 특히 ‘신고하지 못하고 참다가 퇴사했다’는 응답률도 27.3%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직장에서는 ‘신고’를 정당한 권리 행사라기보다 ‘조직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로 치부하거나 차마 재직 중 신고할 수 없어 퇴사 시점에 제기한 노동청 진정에 대해 ‘화려한 퇴사’라며 못마땅해한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사용자의 각 의무 조항은 철저하게 ‘적극적 신고 보장과 신고 이후 신고인(피해 노동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고는 ‘누구든지’ 할 수 있고, 조사 기간부터 신고인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고한 노동자에 대하여 어떠한 방식으로든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사용자에게 형사처벌이 가해진다. 조사를 충분히 거친 결과 신고 사실들이 모두 근로기준법에서 정의 내린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명난다고 해도 신고인에 대한 불리한 처우 등이 허용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피신고인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직장에서 장기 근속하면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몹쓸 범죄자로 낙인찍혔다며 이번에는 신고인을 ‘피신고인’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법률적 맞대응에 나서기 전에 이 법이 왜 시행되었는지를 한 번쯤 돌이켜봐야 한다. 직장 내 수직적 지위 또는 관계 우위성을 이용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속성상 괴롭힘을 호소하는 신고인들은 약자이기 마련이며 피해 호소마저 호락호락하지 않다. 신고 이후 신고인들은 자주 2차 피해에 노출된다. 그렇기에 법은 신고의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두고 신고인을 보호하는 장치를 촘촘히 마련했다.


이 법이 조직 내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신고인의 신고를 ‘거짓말’이라거나 ‘조직에 피해를 주는 행위’라고 여기는 시선부터 바로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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