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지금 파괴적 혁신중인가, 혁신적 파괴중인가. 박민 KBS 사장이 취임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내부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 혁신의 진통이라면 다행이지만, 일련의 과정을 보면 ‘눈엣가시 뽑아내기’ 단어가 더 어울릴 법하다.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인사와 프로그램 폐지, 진행자 교체가 과연 공정한 절차를 통해 진행한 것인지 의문이다. 박민 사장이 지난 14일 대국민사과 회견에서 밝힌 “방송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KBS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두겠”다는 말과는 정반대된 행동이다. 바로 하루 전 단행된 뉴스9 앵커 전격 교체, 시사프로그램인 ‘더 라이브’ 편성 삭제와 폐지가 어떤 기준에서 결정된 것인지 구성원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입으로 신뢰를 말했지만, 시청자와 청취자에 마지막 고별 멘트도 없이 제작 현장에서 내쫓는 모습에서 신뢰는 금이 갔다. 혁신과 거리 먼 ‘파괴적 신뢰’다.
‘뉴스9’ 진행을 새로 맡은 박장범 앵커는 14일 방송에서 “사실 확인 원칙을 충실히 지키지 않는 보도가 나오지 않겠다는 점을 시청자 여러분께 약속”한다고 밝혔다.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 리포트 보도에 덧붙인 앵커 멘트로, 박민 사장이 대국민사과 회견에서 밝힌 4가지 사례를 그대로 옮겨와 내부 반발을 불렀다. 기자들은 성명을 내고 “해당 뉴스를 보도한 기자에게 오류나 문제점이 있는지 확인 절차가 없었다. 기자에게 아무런 반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사과방송에서 공언한 사실 확인 원칙을 스스로 허무는 모습에 분개했다. 해당 리포트를 한 기자도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려 “함께 일하는 동료를 부당하게 모욕한 데스크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며 개탄했다. 누가 제작의 공정성을 해치고 있는지 묻고 있다.
KBS 기자들은 이제 정권 비판 보도에서 자기 검열의 위험한 길로 내몰리고 있다. “정파성 논란을 극복하겠다”는 경영진의 선포는 보도의 기계적 균형을 말하는 것인지, 정권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 모호하다. 정파성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권력의 견제와 비판은 언론 본연의 역할인데, 권력 비판을 정파성 잣대로 재단하면 보도는 위축된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맹목과 순종이란 괴물이 이성을 마비시킨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땡윤 뉴스’에 대한 우려다. 대통령 행보를 메인 뉴스로 올리고, 대통령 발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단순 전달하는 뉴스가 많아지는 게 그 신호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편파적이지 않는 보도는 무색무취한 보도가 아니다. 기자가 날카로운 시각을 잃는 순간 보도는 형해화된다.
수신료 분리 징수 등 여러 위기에 ‘사장 리스크’가 더해진 것은 아닌지 구성원들은 불안해한다. 사장 취임 뒤 조직이 더 극심한 분열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있는 게 방증이다. 대화는 없고 대결만 있는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사장이다. KBS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은 제시하지 않고,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갈라치기부터 하는 행태가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경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송 경험이 없으면 먼저 조직을 알기 위해 구성원들을 만나는 게 순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조직을 수술하겠다고 칼부터 드는 사장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절체절명의 생존 위기”에 응급수술을 아마추어에게 맡겨 놓는 불안을 왜 구성원들이 감당해야 하는가.
‘국민의 방송 KBS’라는 자긍심이 사장이 내뱉은 ‘불공정’이란 말에 무너지고 있다. 적폐 청산의 대상이 된 현실 앞에 한없이 쪼그라들고 있다.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 오늘을 답답해하고 있다. 박민 사장이 내건 ‘다시 국민의 방송’이 왜 ‘용산의 방송’으로 시중에 회자하는지 되새겨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