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필요한 노동시간 유연화는 따로 있다

[이슈 인사이드 | 노동] 전혜원 시사IN 기자

전혜원 시사IN 기자

윤석열 정부는 특별한 제도를 쓰지 않으면 주 52시간 넘게 일을 시킬 수 없던 것을, 월·분기(3개월)·반기(6개월)·1년 단위로 주 평균 52시간 이내이면 되도록 노동시간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했었다. 이러면 어떤 주에는 52시간 넘게 일을 시켜도 불법이 아니다. 과로 논란이 일자 정부는 한 번 근무하면 11시간은 무조건 쉬게 하겠다고 했다. 이때 하루 최장 노동시간은 24시간에서 11시간을 뺀 13시간이다. 여기에 4시간마다 30분씩 휴게시간을 줘야 하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주 6일 근무시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장 노동시간은 69시간(11시간30분×6일)이다.


노동부는 지난 3월6일 이런 내용의 제도 개편을 발표했다. 그런데 불과 열흘 뒤인 3월16일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은 “윤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노동부가 출범시킨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노동시간 개편을 권고한 이래 ‘주 69시간’ 공방은 계속돼왔다. 앞서 지난해 6월 노동부가 비슷한 계획을 발표했을 때부터(당시에는 주 92시간 내지 80시간30분이었다), 길게는 윤 대통령이 정치참여를 선언한 직후인 2021년 7월18일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주 120시간’ 발언을 한 이후로, 윤 대통령이 추진한다는 노동시간 유연화로 특정 주에 몇 시간까지 일하게 되는지는 한 순간도 쟁점이 아닌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단 한 차례도 밝힌 적이 없다가, 매일경제 인터뷰 1년8개월 만인 지난 3월에야 처음 의중을 드러냈다.


11월1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는 대통령의 보완 지시 이후 나왔다. 조사 결과 최근 6개월간 현행 노동시간 규정으로 어려움을 겪은 사업주는 14.5%에 불과했다. ‘추가 소득을 위해 연장노동을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노동자의 58.3%가 없다고 답했으며, 있는 경우에도 주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 이내(55.7%)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노동부는 “설문조사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이성희 차관)한다고 모호한(?) 표현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정책 발표 전에도 수많은 우려가 제기되었고 반영할 기회가 없지 않았는데, 집권 초기 사회적 갈등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엉뚱한 데 쏟아부어놓고도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여성 단독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라우디아 골딘은, 예측 불가능한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이를 대가로 높은 임금을 주는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에 주목했다. 이런 일자리에 주로 남성이 종사하면서 같은 직종에서도 남녀 임금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고용은 불안하지 않으면서도 일할 시간과 장소를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연한 일자리’를 생산적이게 만들어서, 그런 일자리에서 일하는 남녀도 높은 보수를 받게 하자고 골딘은 제안했다. 25~29세에는 70.9%이던 여성 고용률이 35~39세에 57.5%로 주저앉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데 골딘이 말하는 유연한 일자리가 설마 특정 주에는 주 52시간을 넘겨도 되는 일자리겠는가. 주 40시간보다 짧게 일하면서도 ‘2등 정규직’으로 여겨지지 않는 일자리, 아이가 아플 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거나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겠는가. 한국사회에 정말 필요한 ‘노동시간 유연화’가 무엇인지 전향적으로 논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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