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올해 40편 넘게, 칼럼을 작정하고 썼습니다. 타깃 독자는 분명했어요. 바로 기자들입니다. 의료개혁이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언론의 이해도가 낮아서라고 생각했거든요.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언론의 이해도가 높아져야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지고, 사안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쓴 보람이 있었는지, 최근엔 기자들에게 받는 질문의 수준이 달라졌습니다.”
의대 정원 증원을 주장하다 의사협회로부터 징계심의에 회부된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와 지난 14일 나눈 대화 일부다. 아마도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려고 나선 경험이 있는 연구자, 활동가는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해봤을 가능성이 높다. 조금이나마 바꾸려는 동력을 확보하려 해도 평소엔 언론의 관심을 받기가 쉽지 않고, 간혹 공론화가 되어도 논의가 잘 진전되지 않는다. 몇 년 뒤에 다시 공론화가 돼서 이번엔 좀 바뀌려나 기대해도, 출입처가 바뀐 기자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고, 문제의 표피를 다룬 기사들이 주로 나오다가 다시 대중의 관심을 잃는 일이 반복된다.
기자들이 공부를 안 해서, 혹은 의제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문제일까. 그건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바뀌지 않을까. 평가(보상)체계와 지원체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직접 시장에서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다. 따라서 영업실적을 통해 보상하기 어렵고, 다른 양적인 지표로 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회사에게(혹은 독자에게) 돈을 많이 벌어준다고 해서, 클릭수가 많이 나오는 기사를 쓴다고 해서 좋은 기자로 평가받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세상에 중요한 변화를 촉발한 기사를 써도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자신의 출입처에서 ‘단독’ 기사를 잘 쓰는 기자들이 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를 잘 커버한단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독 기사 중 대다수가 누군가 은폐하려는 진실이라기보단, 세상에 몇 분 먼저 알렸다는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언론사 내부 평가체계 뿐 아니라 각종 기자상 시상에서도 ‘의제 천착성’, ‘변화를 촉진한 정도’ 등을 중요하게 반영할 필요가 있다. 배우의 필모그래피처럼 언론인의 아티클로그래피가 ‘사회에 미친 영향’으로 평가되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중요한 언론개혁은 이미 이뤄진 셈일 것이다.
언론인이 천착하고, 연구하고 활동할 만한 지원체계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언론사 운영상 기자가 한 분야를 오래 취재하도록 배려하는 게 쉽지 않을 순 있지만, 여러 지원 방안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일단 기자들이 학계가 생산한 모든 지식(논문, 보고서)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개별 언론사 차원이 아닌 학계와 언론계의 대표성을 가진 기관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개별 언론사에선 의제 연구를 위한 공부모임, 소모임 등을 활성화하고, 기사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보고서나 저서 집필을 독려하는 체계(지원금, 집필 휴가 등)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 비영리기관이나 연구기관에서 연수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연구자와 활동가의 눈으로 공론장을 살펴보는 경험이 언론인에게도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문제가 개선되는 과정엔 반드시 활동, 연구, 공론화가 존재한다. 이 세 가지를 서로 연결하고 촉진하는 것이 언론의 조명이다. 연구하고 활동하는 기자들이 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