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언론윤리 차원에서 참으로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특히 최근에는 배우 이선균씨의 육성 보도나 남현희씨나 황의조 선수 사건 등 선정적 보도가 쏟아졌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언론의 품격’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언론’과 ‘품격’이라는 말이 연결될 수 있을지 의아한 이도 있을 것 같다. 딱 10년 전에 <한국 언론의 품격>이라는 책을 쓸 때도 그랬다. 운 좋게 훌륭한 분들 틈에 끼어서 언론법제 부분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제목을 놓고 같은 논란이 있었다. 책을 기획한 관훈클럽 집행부는 ‘없는 품격이라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제목’이라고 설명했고 저자들도 동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품격 있는 언론은 어떤 것일까? 언론 윤리의 핵심 가치는 사실성과 공익성이다. 그런데 형식적으로 사실성만 충족하면 뭐든 보도한다면 이를 품격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공익성이 있다고 어떤 내용이든, 어떤 취재 방법이든 마구 동원해도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품격 있는 보도’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한다면 ‘정당한 공적 관심사’를 ‘적정한 방식과 수준에서 다루는 보도’가 아닐까.
마약 혐의를 받는 유명 배우의 익숙한 목소리를 공영방송 메인뉴스에서 들으면서, 그나마 있던 마지막 품격까지 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단독’이라는 표시까지 달았다. 마약 혐의와는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대화도 방송됐다. 여러 언론이 보도 경쟁을 벌인 남현희씨나 황의조 선수 관련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유명인이고 공적 인물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 스캔들이나 범죄와 관련됐다고 모든 영역이 까발려져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정말 공적 관심사에 부합할 만한 내용을, 불필요한 사적 영역을 최대한 침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도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선정적으로 비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보도가 품격 있는 보도일 것이다. ‘수신료의 가치’ 운운하는 공영방송이나 정론직필을 내세우는 언론이라면 더 그렇다.
법적으로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가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해서 모두 ‘정당한 공적 관심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사건 보도 중에는 마치 범죄나 사회적 의혹을 다루는 진지한 보도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온갖 선정적인 내용을 거리낌 없이 파헤치는 것들이 많다. 평소에는 온갖 고상한 명분을 내세우던 매체들이 이렇게 선정적 호기심에 영합하는 보도를 할 때는 사실 보도일 뿐이라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변명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기만이다. 진지한 시사적 쟁점을 보도하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대중의 호기심에 영합해 조회 수 경쟁을 하는 모습에서 품격을 찾기는 어렵다.
취재 방법도 마찬가지다. 도청과 같이 명백한 불법만 아니라면 동의 없는 촬영이나 녹음, 함정 취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풍토가 굳어지고 있다. 이런 식의 취재와 폭로 저널리즘으로 재미를 보는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품격 있는 언론을 지향하는 곳이라면 달라야 한다. 이 또한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법적 하한선이 이른바 ‘책임 있는 언론’의 윤리적 하한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적 하한선보다는 높은 곳을 지향하려는 자세에서 비로소 언론의 품격이 싹이라도 틔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