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달리기가 어른의 기부가 되는 날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1년 12월 한겨레신문 지면에 ‘아이의 달리기가 기부가 될 때’라는 스포츠 칼럼을 썼었다. 미국에 잠시 머물 동안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있던 기부 관련 행사를 소개한 글이었다.


‘펀 런’(Fun Run)으로 명명된 이 행사는 학년별로 작은 운동장을 다 함께 달리는데 아이가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부모가 1달러씩 기부하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정해진 바퀴 수를 모두 채우면 지역 기업 등에서 기부 받은 작은 선물을 받았다. 최대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운동장 35바퀴였으니까 부모의 기부액도 아이 한 명 당 35달러가 최고였다. 아이 건강을 위한 신체 활동이 부모의 기부로 이어진다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칼럼이 나간 뒤 독자 자필 편지를 받았다. 칼럼을 읽은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회장 선거에 나가면서 ‘펀 런’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이 되었다고 했다. 이후 공약 실천을 위해 여러 기업에 취지를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그리고 한참 뒤 또 소식이 왔다. 교장 선생님이 안전 등을 이유로 행사에 난감해했다는 것이었다. 하긴 체육 시간에 아이가 조금 다치기만 해도 학부모 항의가 들어오는 시대에 달리기 기부 행사라니…. 사고 방지를 위해 주말마다 학교 운동장을 폐쇄하는 곳이 우리나라다.


학교가 체육과 점점 담을 쌓으며 국내 학생 운동 지수는 코로나19 시대까지 거치며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4월 교육부가 발표한 전국 초·중·고등학생 건강체력평가(PAPS) 자료만 봐도 그렇다. 2009년부터 해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PAPS는 심폐지구력, 유연성, 근력·근지구력, 순발력, 체지방을 측정해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주고 점수대에 따라 1~5등급을 매긴다.


지난해의 경우 1등급 비율은 5.5%였다. 2021년(4.8%)보다는 올랐으나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6.8%)보다는 낮았다. 2등급 비율 또한 34.3%로 2019년(38.5%)보다 낮게 나타났다. 1·2등급을 합하면 39.8%(2019년 45.3%)였다. 반면 최저 등급인 5등급 비율은 2019년 1.2%에서 2022년 1.9%로, 4등급은 같은 기간 11.0%에서 14.7%까지 증가했다. 아이들의 체력이 그만큼 약화했다는 뜻이다.


다행인 것은 제2차 학생건강증진 기본계획(2024~2028·10월 말 발표)에 따라 내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통합교과 ‘즐거운 생활’에서 체육이 따로 분리된다는 점이다. 40년 가까이 체육은 음악, 미술과 묶여 교육됐고 안전 등을 이유로 점점 외면돼 왔었다. 체육 교과가 따로 분리되면 지금보다 초등 1~2학년 체육 시간이 2배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도 미국, 영국, 일본 등과 비교하면 아직도 턱없이 운동 시간이 부족하다.


‘펀 런’ 행사가 있던 날, 아이들은 35바퀴 돌기 미션 완수 티셔츠를 내보이며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로 흡수하는 지식, 지혜도 있지만 몸으로 체득되는 것도 분명 있다. 아이 운동 부족은 어른의 책임이고, 기회의 장은 어른이 만들어줘야만 한다. 늦잠만 자던 딸이 반 대항 피구를 위해 혼자서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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