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종말 예고, 고온화 현상 시작됐다’.
1990년, 한 뉴스통신사의 특파원이 단 제목이다. 머리에 ‘종말’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걸었다. 34년이 지났고, 아직은 종말이 아니다. 그러나 종말보다 무서운 것은 종말로 가는 길이며, 그 길을 이미 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뻔질나게 들었다. 어린시절을 떠올려보면, 촌구석 내 고향에도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이 소개됐다. 수업을 듣고는 우유갑을 모으는 등의 일련의 활동을 하곤 했는데, 지구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활동이었다.
기후변화는 환경보전과 더불어 식상한 주제로 꼽힌다. 텀블러와 에코백을 사용하고, 자원을 절약하자는 기사는 도돌이표처럼 쓰이고 거기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 심층기사는 잘 팔리지 않는다. 사석에서 만난 한 기자는 “기후변화가 제목에 들어가면 기사를 볼 맛이 확 줄어든다. PV가 증거”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는 동안 기후변화는 계속 진행됐고, 멈추지 않았다. 1시간에 100㎜, 하루에 400㎜ 가까운 비가 내렸다. 지난해 여름철에는 국토 전역에 폭염 특보가 발령됐고, 여름철 남부지방 장맛비는 관측사상 가장 많이 퍼부었다.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연구소는 지난해 세계 평균기온이 사상 최고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난해 12월 갑작스러운 따뜻한 날씨는 ‘기후변화 때문일까’하는 생각에 괜히 반갑지 않았다.
탄소중립 달성 방안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감축지속가능항공유(SAF), 암모니아 추진 선박 등을 내놨다. 유통업계는 생산·포장을 저탄소로 바꾼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 규모를 놓고 보면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석탄발전 폐쇄는 여전히 먼 길이다. 기술은 개발돼 있는데도 이해관계 때문에 상용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태양광과 원자력은 정쟁 대상이 돼 갈등을 낳았다.
방법이 문제일까, 인식이 문제일까 아니면 친환경이나 탄소중립을 정쟁으로 올리는 정치나 행정 제도 탓일까. 저마다 ‘잘 살자’는 마음이겠으나, 입씨름하기에 ‘종말 시계’는 너무 빨리 돌고 있다. 기상청의 기후위기시계는 지구평균기온 상승의 한계점이 5년 남았다고 설정됐다.
기후변화를 전담으로 좇고 있다. 주로 환경부와 기상청 기자실에 적(籍)을 두지만, 지난주에는 외교부에 전화를 걸어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후속 취재를 했다. 그끄저께는 국회에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 대응 방향을 들었다. 국민연금의 녹색채권 투자 등 시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투자업계 이야기도 들었다. 환경 다큐멘터리 등 영화나,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연예인의 활동도 눈여겨보고 있다.
사실 가끔 우울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각 기업은 ESG팀을, 언론은 기후 담당을 세워놓고 기후변화 중요성을 일종의 ‘면피’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새해에는 각 분야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주제를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총선 후보에게 각 지역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물어보면 어떨까. 윤석열 대통령의 갑진년 신년사에선 ‘기후’를 찾아볼 수 없었으니, 후보시절 기후 공약 추진 상황을 톺아봐도 좋겠고, 산업계 감축 목표 이행 경과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다 함께 기후 기자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