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재판에는 피해자 자리가 없습니다. 검사와 피고인이 대립하는 형사 재판에서 피해자는 ‘제3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취재진은 방청석 어딘가에 앉아있었을 피해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어떤 돈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피고인들이 일방적으로 건넨 돈, 바로 ‘형사공탁금’입니다.
형사공탁은 피해자와 합의에 실패한 피고인이 법원에 선처를 구하는 제도입니다. 법원에 공탁금을 맡기면 재판부는 이를 피해자를 위한 피해회복으로 보고 감형을 해줍니다. 그런데 1년 전, 법 개정으로 제도 악용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피고인이 공탁금을 낼 수 있게 되면서 형사공탁이 ‘신종 감형 기술’이 돼버린 겁니다.
피해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돈만 보고 감형이 이뤄지는 현실, 취재진은 사법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제도 시행 이후, 관련 판결문 1700여 건을 모두 입수했고 이 가운데 988건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던진 돈 앞에 피해자의 엄벌 탄원 의사가 무력해지는 재판 결과가 수도 없이 잇따랐습니다. 다행히 저희 보도 이후 작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의 일방적인 형사공탁에 대한 피해자 의사를 재판부가 확인한 뒤 이를 양형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찰인권위에서도 부당한 감형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고, 대법원은 내년부터 피해자 의견 진술권 보장을 위한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취재진은 이번 보도를 계기로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관련 보도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