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계열 정당의 집권체제에서는 ‘기존 제도를 활용하여 비교적 손쉽게 장악할 수 있는 공영매체’와 ‘정치·경제적 거래를 통해 포섭할 수 있는 기타 언론’을 구분하고, 자원의 불균등한 배분을 통해 성장시킬 우호적 언론과 약화시킬 비우호적 언론을 철저히 갈라 분할통치하는 전략을 세워 일말의 주저도 없이 실천에 옮겼다.”
한국언론정보학회 소속 5인의 언론학자가 2022년에 출간한 ‘언론 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에 나오는 구절이다(26쪽). 여기서 언급된 집권체제가 활용하는 기존 제도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이 두 기구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기구다. 우선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이다. 흔히 ‘방통위’라 부르고 공무원들이 일한다. 이 기관은 지상파·종편·보도 방송채널 등의 허가 및 재허가, 공영방송 및 수신료 정책 등을 담당한다. 최근에 논란이 된 KBS 수신료 문제는 이 기구의 소관이다.
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민간독립기구’다. 줄여서 ‘방심위’로 부르고 구성원들도 공무원이 아니다. 이 기관이 주로 담당하는 업무는 방송 내용 심의 및 제재,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불법 유해 정보 심의 및 시정요구 등이다. 이 기관이 민간독립기구인 이유는 방송내용을 심의하기 때문인데, 행정기관이 그 내용을 심의한다면 사실상의 ‘국가검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방통위’는 그렇다 하더라도 왜 민간독립기구인 ‘방심위’가 언론장악을 위해 활용하는 수단이 될까? 그 이유는 무늬만 민간독립기구이기 때문이다.
민간독립기구라고 하지만 이 조직을 이끄는 심의위원 9인을 대통령이 위촉한다. 대통령이 3인, 국회의장이 3인(국회의장 1인, 여야대표 각 1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3인(여당 1인, 야당 2인)의 추천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6:3 혹은 5:4의 우위를 갖는 위원회가 만들어진다. 결국, 권력이 방심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법부도 ‘방심위’가 국가 행정기구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2023년 9월, 서울행정법원은 정연주 전 방심위 위원장이 낸, 위원장직 해촉에 대한 집행정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방심위를 민간독립기구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국가기관의 권한쟁의를 심판하는 헌법재판소는 방심위의 위원을 대통령이 위촉하고 경비도 국고에서 나가기에 국가행정기관이라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거스르는 것이란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9월 류희림을 위원장으로 한 방심위 체제가 시작된 이후 앞서 5인의 언론학자가 제기한 문제가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권력 비판적인 언론에는 중징계를, 반면 우호적인 언론에는 봐주기 심의가 이뤄진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류희림 위원장은 주변인에 의한 민원신청 사주 의혹에까지 휩싸인 상황이다. 아들, 동생, 일가친척 등이 민원을 제기하고 자신이 그 민원을 심사했다는 사실이 공익제보를 통해 드러났다. 그러자 류 위원장이 취한 조치는 공익제보자를 고발하고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 것뿐이다. 아, 더 있다. 이에 ‘너도 위원장이냐’고 항의하는 야당 추천 위원들을 해촉(건의)하기도 했다.
류희림 위원장의 이런 행보에 경찰은 류 위원장에 대한 각종 고발엔 늦장 수사로, 공익제보자 색출엔 발 빠른 강제수사로 화답했다. 부패방지권익위법과 공익신고자보호법과 달리, 보호받아야 할 이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의아해하지만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권력의 뻔뻔함과 모호한 제도, 그 뻔뻔함과 제도에서 당장 이익을 보는 집단의 외면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 외면하는 집단에서 언론은 예외일까? 우리 언론은 권력이 행사하는 ‘언론 분할통치’에 대항하여 갈리지 않는 목소리를 낼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럴 수 있으리란 믿음, 새해의 첫 칼럼에 담아 본다면 너무 큰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