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여 전에 기자를 그만둔 이후에 사회 정책을 공부하면서 2015년 7월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기존 단일급여체계에서 맞춤형 급여체계로 전환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은희·박윤영·김우현의 연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과정 연구: 맞춤형급여를 중심으로’(2021)를 보면 맞춤형 급여체계로의 개편이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었고, 제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이었다고 한다.
왜 기자 때 이토록 중요한 제도적 전환을 알지 못했을까. 송파 세 모녀 사건은 기억하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제도는 왜 인지하지도 못한 걸까. 변명하자면 2015년에 육아휴직을 냈었다. 그런데 다시 찾아보니 당시 이 제도적 전환을 다룬 기사들이 현저히 적었고, 심층 기사는 더욱 드물었다. 심지어 조선일보엔 2015년 한 해 동안 ‘맞춤형 급여’로 검색되는 기사가 하나도 없다. 언론의 냉대로 인해 많은 언론인뿐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맞춤형 급여체계로의 전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모를 것이라 짐작한다.
맞춤형 급여체계로의 개편에서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지원 기준이었던 ‘최저생계비’를 ‘기준 중위소득’으로 바꾼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통합적인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네 개의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로 나눈 것이다.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의 구조적 개편이었고, 각 이해관계자들의 전장이 ‘최저생계비’에서 ‘기준 중위소득’으로 바뀔 정도로 큰 변화였다. 만일 빈곤층의 생활 수준을 높이려면 바뀐 전장에 맞는 새로운 전략이 요구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이 개편이 우선순위가 맞는가란 문제 제기가 있을 정도로 체계적 논의의 결과물이 아니었고, 언론은 정책적 전환기에 제대로 문제 진단과 대안 모색을 주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바뀌는 제도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조차 실패했다. 소수의 연구자, 활동가들의 제안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제도가 변경됐을 뿐이었다.
9년 전의 일이 떠오른 이유는 지금이 중요한 정책적 전환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기에 정책을 전환하지 않으면 사회가 지속되기 어려울 정도로 위중한 상황이지만, 언론이 그에 부합하는 공론장을 만들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회의적이다. 저출생, 불평등, 기후위기 등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점점 대안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 더욱 절망적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사회지출의 비중(OECD SOCX 통계 기준)은 2016년 9.9%에서 2022년 14.8%로 올라 OECD 평균인 20% 수준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문제는 연금과 보건의료 등 고령화 관련 지출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저출생 추이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수준인 만큼 고령화의 추세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한 지출 증가는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복지 확대와는 거리가 멀고,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비용에 가깝다. 이런 추세로 2030년에 이르면 정책적 전환을 꾀하기 어려운 재정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정책적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골든타임’에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문제 진단과 대안 모색, 양쪽을 다루는 심층 기획 기사들을 쏟아내야 한다. 다행히 최근 구조적 문제 중 하나인 저출생을 다루는 기사들이 늘고 있다. ‘빅카인즈’에 ‘저출산’이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2023년 4059건, 2024년 3465건의 기사가 조회되고, 이 중에 일부는 단순 보도가 아닌 심층 기사다. 달라진 언론의 관심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안 논의는 여전히 빈약하다. 많은 언론들이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급조한 저출생 대책들을 소개할 뿐, 해당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르거나 더 나은 대안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 보도는 부족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열리는 총선인데도 탄소배출을 대폭 줄이는 체제 전환을 어찌 달성할지, 각 당의 전략과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공론장의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론장의 주요 행위자인 언론이 정책적 전환기에 제 역할을 하기 위해 한 분 한 분의 언론인이 책임감을 가져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