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가 '반쪽짜리 정의'에서 벗어나는 길

[이슈 인사이드 | 노동] 김지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 기자

김지환 경향신문 기자

지난해 방송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은 김대호 MBC 아나운서는 1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장성규 전 JTBC 아나운서와 ‘프리랜서 선언’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장 전 아나운서는 2019년 JTBC를 떠나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아나운서는 장 전 아나운서에게 이렇게 물었다. “갈등은 안 했어요? 나가면 직장 다니다가 사업하는 거잖아. 개인사업자잖아.”


정규직 아나운서 중 누군가는 직장을 떠나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프리랜서를 꿈꾼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아나운서 일을 시작한 이들은 노동자로서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정규직 아나운서를 꿈꾼다. ‘비정규직 백화점’으로 불리는 방송사 내부 노동시장 양극화가 빚은 풍경이다.


이산하 아나운서는 2015년 12월 UBC울산방송과 구두계약을 맺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다. 기상캐스터뿐 아니라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취재기자 업무도 맡았다. 2020년 7월부터는 아침 뉴스 프로그램 앵커도 맡았다.


2021년 4월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이 아나운서는 노동위원회를 찾았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2022년 12월 서울행정법원 결론도 같았다. 이 아나운서가 했던 뉴스 진행 업무는 정규직 아나운서와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는 점, 이 아나운서가 다른 아나운서들과 함께 주말 당직을 섰던 점 등이 노동자성 인정 근거였다. 1심 승소 뒤 복직한 이 아나운서는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가 됐지만 정규직 아나운서는 되지 못했다. 하루 4~6시간 단시간 노동을 했고, 올해 1월엔 편집요원으로 발령이 났다. 이 아나운서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1인시위를 벌였다.


그가 방송국 앞에서 외로운 싸움을 할 때 따뜻한 음료를 건네거나 말없이 안아준 이들은 방송사 비정규직이었다. 민주노총 언론노조 산하조직이자 정규직 노조인 UBC울산방송지부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최근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조차 될 수 없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에 따르면 UBC울산방송지부의 한 간부는 1월17일 울산지역 모 인사를 만나 이 아나운서의 업무 능력이 좋지 않다거나 이 아나운서는 엔딩크레딧의 꼭두각시이며 본인 의지로 1인시위를 시작한 게 아니라는 발언을 했다. 노동자 간 격차 해소를 위해 조직된 산별노조(언론노조) 내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기 어려운 발언이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말 “(해당 발언은) 민주노조 운동에서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며 방송 비정규직 당사자와 엔딩크레딧 등에 사과했다. 언론노조가 엔딩크레딧의 문제제기를 접한 뒤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입장을 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언론노조의 성찰은 사과로 끝나선 안 된다. “비정규직·불안정 언론노동자의 일할 권리, 노조할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변함없이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만큼 이 아나운서가 정규직 노동자로 방송 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실질적 연대를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을 비판하는 언론노조 목소리가 ‘반쪽짜리 정의’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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