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14일 기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MBC 잘 들어”라며 1988년 8월 당시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사회부장이 현역 군인들에 의해 ‘회칼 테러’를 당한 사건을 언급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쓴 게 문제였다는 식이었다. 우리에게 그의 말은 현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계속하려면 ‘칼 맞을 각오를 하라’는 협박으로 들린다.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라는 점은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다.
황 수석은 농담이라 했지만 우리는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년 간 정부 비판적인 언론을 겨냥한 현 정권의 비상식적인 공세를 이미 수차례 목격한 적 있어서다.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사와 기자가 압수수색을 당했고, 대통령의 실수를 지적한 언론사는 최고 수위 징계를 받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를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하는 낯 뜨거운 취재 제한도 서슴지 않았다. 정권 비판 보도는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황 수석의 발언에는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정권의 심중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처럼 보인다.
현 정부 들어 입이 틀어 막힌 건 언론만이 아니다. 황 수석의 망언이 있었던 14일 언론·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한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21조넷)’는 인터넷·시민사회·문화계 등 전 영역에 걸쳐 표현의 자유 침해가 심각하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 정부는 지난 2년 간 대통령을 풍자하는 영상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는 등 인터넷을 검열했고, 대통령실 직원 명단과 수의계약 현황 등 시민의 알 권리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정보 공개를 거부했으며, 대학 학위수여식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던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은 채 강제로 끌어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18일부터 3일간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단독으로 주최하며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나선 건 ‘기만’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대통령은 정말 모르는 걸까. 실제로 언론에 대한 검열과 감시가 이어지며 한국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민주주의에서 오히려 멀어지는 중이다.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7일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지수(LDI)는 0.60점으로 179개국 중 47위를 기록해 직전 조사 대비 19위가 하락했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을 ‘언론의 대(對) 정부 비판이 위축된 나라’ 20개국 중 하나이자 ‘독재화’하고 있는 국가로 꼽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가 1987년 6공화국 출범 이래 최악으로 추락했다”는 21조넷의 주장을 과장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표현의 자유와 시민의 알 권리에 대한 인식이 민주주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언론관을 가졌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번 회의에서도 윤 대통령은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가 민주주의 시스템을 위협한다”며 검열과 감시에 무게를 더 싣는 발언을 했다. 법과 역사가 증명하는 민주주의 전제조건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다. 어떤 방해나 위협 없이 취재할 수 있어야 하고 외부 영향과 간섭을 받지 않고 논평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의 입을 틀어막아서 완성할 수 있는 민주주의야말로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대통령이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