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이 어느 해보다 잔인한 봄을 맞고 있다. (2008년) 선배 기자 6명이 해직될 때도 이렇게 잔인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땐 다시 돌아올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배구조가 바뀌면 YTN 상황은 불가역적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 잔인한 봄이다.”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
YTN 최대주주가 된 유진이엔티가 오는 29일 주주총회에서 직접 추천한 인사들로 이사회를 재편하고 본격적인 YTN 경영에 나설 전망이다. 유진이엔티는 과거 YTN에서 공정방송 훼손과 노조 탄압의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은 김백 전 상무를 사내이사로 추천하고 사장 후보로도 내정한 것으로 알려져 YTN 안팎에선 ‘2008년 사태’ 그 이상이 재현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는 이를 “언론장악의 외주화”로 정의하고, 유진그룹을 “언론장악의 하청업체”라 비판하고 있다.
과거 정권이 YTN 대주주인 공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이용해 YTN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YTN 지배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방식으로 YTN을 ‘제압’했다. 과거 정권이 ‘검토’만 했던 일을 이 정부는 출범 반년 만에 결행하는 신속함도 보였다. 이 같은 신속성과 함께 △명확성 △총체적 동원 △무력화 등 4요소가 윤석열 정권의 “언론·미디어 정책 방법론”이라는 게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 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방송사노동조합대표자협의회 공동 후원으로 21일 열린 ‘침묵의 봄, YTN을 말하다’ 기획세미나에서 채 교수는 YTN 장악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명확하게 방송통신위원회와 기획재정부를 통해 지배구조를 교체하면서 예외적인 신속성을 보였으며, 언론장악 적폐 세력을 동원하고, 보도전문채널이란 공적 가치는 물론 자본시장법이나 방송법도 무력화했다”는 것이다.
YTN 지배구조를 바꾸는 건 단순히 공기업이 가진 지분을 민간기업에 팔아넘기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보도채널 최대주주 변경승인은 방통위로서도 처음 하는 일이었고, 민간자본의 보도채널 진입을 최초로 허용한다는 점에서 방송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이나 파장도 컸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공청회 등 사회적 논의 과정을 생략하고 이 모든 일의 최초 기획부터 최종 승인까지 1년 6개월여 만에 끝내버렸다. 이에 ‘졸속매각’ ‘부실심사’ 논란이 일었고, YTN지부와 YTN 우리사주조합은 방통위의 최대주주 변경승인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과 함께 효력정지 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원고 적격성’ 문제 등을 들어 가처분을 기각했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는 그러나 방통위와 대주주 영향력 아래에 있는 YTN 사장이 직접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보충성 원칙’에 따라 예외를 인정해줘야 방송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며 노조와 사주조합의 원고 적격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공영방송 성격을 가진 YTN이 민간기업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만큼 YTN 구성원들이 겪을 신분상 불이익이나 일반 국민에 미치는 영향 등 공공복리에 대한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또 변경승인 처분의 주체인 방통위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통위법 해석상 방통위는 5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합의제행정청이고 그 구성에 있어서 일반적인 위원회와는 달리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입법부의 추천권을 보장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볼 때 지금 방통위는 단순히 정족수 문제가 아니라 구성이 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며 합법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방통위의 처분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를 법원이 받아들일지는 최 교수 스스로도 회의적이었다. 1심 재판부의 각하·기각 결정에 대해 YTN지부 등은 즉각 항고했으나, 보름이 지나도록 2심 재판부는 심문기일도 잡지 않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유진이엔티가 최대주주로 정식 ‘데뷔’하는 YTN 주주총회는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YTN은 시작일뿐, ‘공영언론 해체’ 큰 그림‘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유진이엔티가 김백 전 상무와 같이 “YTN 통제 경험이 있는 사람을 동원”한 것이 유진만의 의도이겠냐면서 “큰 그림을 그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YTN은 시작일뿐이고 역시 공영언론 전체의 구조 변화, 해체라는 거대 기획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씁쓸함이 있다”며 “결국 이 흐름대로 갔을 때 YTN 기자들이 자기검열 없이 보도할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이 현장 기자들로서 너무 괴롭고, 공적 언론으로 제대로 기능하던 매체가 하나 더 줄어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에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한석 YTN지부장은 “MBC에 김장겸이 있다면 YTN엔 김백이 있다”며 “그런 그가 사장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대단히 당황스럽고 난감하고 솔직히 무력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싸워왔듯 계속 싸울 거고 어떤 식으로든 길을 찾아내겠다”면서 “YTN이 어느 해보다 잔인한 봄을 맞고 있지만, 결코 침묵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