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의 일이다. 한 스포츠 구단한테서 문자로 영상 두 개를 받았다. 정규리그 분야별 투표에서 소속 구단의 선수를 뽑아달라며 투표권이 있는 매체 기자들에게 돌린 선수 관련 홍보 영상이었다. 분위기상 다른 구단 선수에게 다소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소속 구단이 준비를 참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영상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해당 영상은 오히려 선수에게 나쁜 쪽으로 영향을 미쳤다. 차별화된 영상이 문제였다.
영상 제목은 ‘OO상 △선수 영상_남자 기자 버전’, ‘OO상 △선수 영상_여자 기자 버전’으로 되어 있었다. 남자 기자 버전은 4분3초 분량으로 그의 팀 내 비중과 그가 리그에서 이룬 성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로 선수로서 그의 성장사를 부각했다.
하지만 1분54초 분량의 여자 기자 버전은 그의 ‘외모’와 ‘인기’만을 강조했다. 경기 기록 등은 영상 막판에 표 하나로만 보여줬다. 해당 선수가 팀 내에서 어떤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 기자 버전에서 그는 그저 팬 몰이를 하는 인기 많은 ‘꽃미남’ 선수였다.
해당 구단은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가 여성 기자들의 항의가 이어진 뒤 뒤늦게 사과 전화를 돌렸다. 목소리를 낮춰 사과하면서도 “버전 1, 버전 2로 제목을 달았어야 했다”라는 말을 했다. 그랬다면 그들의 최초의 의도가 감춰졌을까. 여성 기자는 성적이 아니라 외모로 투표를 한다는 인식은 어디서부터 생겼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남자 기자 버전’의 영상만 봤던 한 남성 기자는 ‘여자 기자 버전’의 영상을 본 뒤 “영상 제작 시작과 끝이 궁금하다. 제작 과정에서, 그리고 마지막 홍보 과정에서 구단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면 구단 자체에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저 홍보 영상 하나였지만 구단이 평소 여성 스포츠 기자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봤는지 알 수 있는 사례였다.
아마도 여성 스포츠 팬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로야구를 비롯해 프로배구, 프로농구 등에서 ‘직관’(직접 관람) 여성 팬의 숫자가 이미 남성 팬 숫자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그렇다. 스포츠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아이돌 그룹 팬에 빗대 ‘‘□□맘’이 스포츠 판을 흐린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스포츠를 남성 전유물로 인식하는 옛 사고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2000년대 프로야구 취재를 가서, 더그아웃 브리핑이 끝나고 기자실로 돌아오면 매니저가 몰래 소금을 뿌리던 때도 있었다. “아침에 여자를 보면 재수가 없다”라는 이유에서였다. “스포츠 규칙도 잘 모르는 ×이”라는 뒷말도 종종 들었다. 취재 현장에 여성 기자가 3~4명 정도밖에 없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2020년대다. 여성 스포츠 기자들의 숫자는 200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듯 취재 현장 분위기도 많이 개선됐다. 그런데 일부 구단의 인식은 2000년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수고스럽게 성별이 다르게 영상을 제작한 구단의 정성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상 탓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 해당 선수도 마찬가지고. 결과적으로 그는 실력보다 한참 모자란 표를 받고 상을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