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8일, 섬진강 제방이 터졌습니다. 흙탕이 휩쓴 수라장 속에서 강변 사는 노인들은 좌절했고 울었습니다. 이때부터 이 재난을 부단히 기록했습니다. 왜 제방이 무너졌는지 따졌고, 왜 온당히 배상하려 하지 않는지 캐물었습니다. 마침내 국가 배상이 됐을 때, 저는 다 끝났다고 여겼습니다. 여든 먹은 노인의 속내를 듣고는, 어디 얻어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비만 오면 마누라가 보따리를 싸매 옥상으로 옮긴다”라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새벽 두 시에 그 난리를 피웠다는 하소연입니다. 처마를 때리는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저 비가 또다시 집도, 소도, 이번엔 나도 집어삼킬까, 악몽을 꾼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재난은 끝나지 않았던 겁니다. 이 악몽은 진짜인가, 재난경험자 84인의 정신건강을 진단한 이유입니다. 생존자들을 찾아 “요새 어때요?” 정도를 묻는 미디어 콘텐츠는 그간 있었으나, 연구로써 심리 변화를 추적해 실증한 보도는 처음입니다. 재난엔 속병이 따로 있다는 걸 명확히 하고 싶었고, 배·보상만으로 상처를 덧입히려는 국가의 구호 방식이 그릇됐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재난경험자가 겪는 심리적 외상 가운데 절반은 2차 가해로 생깁니다. 적당히 지불하고 끝내자는 제삼자의 날 선 냉대와 왜곡된 시선은 재난의 속병을 덧나게 하고 있습니다. 진상 규명과 심리회복 대신 목숨값 먼저 매기는 재난 구호는 온당한가? 세월호와 이태원 사이, 우리는 나아졌는지 잘 따져보면 좋겠습니다. 계절이 세 번 바뀌도록, 어려운 연구 이끌며 취재를 도운 계명대 최윤경 교수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가성비 최악인 취잿거리를 욕심껏 탐사하게끔 밀어준 선후배들이 있다는 것도 참 고마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