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히카리, 오대, 조명1호, 조영, 해담쌀, 해들, 해품, 알찬미, 삼광, 새일미, 새청무, 신동진, 영진, 안평, 영호진미, 일품, 참드림, 추청, 친들, 동진찰, 백옥찰, 강대찬, 참동진….
정부가 보급을 책임지는 쌀 품종들이다. 세상에 나온 볍씨는 더 많다. 대부분이 선택받지 못한 것이다. 이 보급종을 주식이나 가상화폐로 감히 비유하자면 대장주나 대장코인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농부가 믿고 뿌리는 볍씨는 대체로 소비자가 믿고 먹는 쌀이 된다.
취재를 통해 표면 위로 드러난 국립종자원 ‘곰팡이 사태’는 고로, 그 자체로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당국의 대응은 지금도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곰팡이 피해를 입은 신동진 볍씨 300여톤은 약 7000ha, 특정 지역에선 40% 가까운 면적에 뿌릴 수 있는 양이다. 특히 전북 지역에서 신동진이 가지는 독보적 상징성과 브랜드 파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놀라운 건 정식 취재차 기관을 방문했을 때였다. “종자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사고 아닌데요”라던 국립종자원 관계자의 태연한 대답. 순간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싶었다. 취재를 마치고 국립종자원을 나서는데 현관에 투박한 붓글씨체로 걸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농민은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
대체품종인 ‘참동진’을 공급하면 그만이란 식의 대응은 정확히 ‘공급자 마인드’였다. 볍씨 하나, 쌀 한 톨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쌀시장을 책임지는 이들을 카메라 앞으로 불러냈을 때, 비로소 이 ‘곰팡이 사태’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취재 과정에서 묵묵히 지역 농정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농사 한번 지어본 적 없는 기자의 어설프고 긴 질문에, 그들은 배가 넘는 정보 값으로 기사를 풍성하게 해주었다.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뉴스가 있는 현장을 핏줄이 잔뜩 선 팔뚝과 120%의 진심으로 담아내는 진성민 선배, 이번 취재가 완결성을 갖추도록 독려하고, 아이템 선정과 기사 분량 등에 구애 없이 높은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정태후·유룡 데스크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