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TBS 앞에 남은 시간이다. 열흘 뒤인 6월1일부로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는 폐지된다. 조례가 제정돼 시행된 지 만 4년 3개월 만이다. 이미 1년 반 전 결정된 폐지 방침을 되돌리거나 시점을 늦추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마지막 희망으로 여겨졌던 서울시의회 임시회는 아무런 응답 없이 지난 3일 폐회했다. 이론적으로는 남은 열흘 안에 TBS에 대한 추가 지원을 위한 ‘원포인트’ 임시회를 여는 것도 가능하나, 김현기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분위기를 볼 때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TBS 지원 폐지 조례는 6월1일 시행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폐지 조례가 시행된다고 해서 TBS가 당장 문을 닫는 건 아니다. 서울시가 출연금을 교부할 법적 근거가 사라질 뿐, 서울시 출연기관의 지위를 바로 잃지도 않는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에 TBS에 대한 출연기관 지정 해제를 요청했는데, 행안부의 심의 및 승인을 거쳐 실제 재단을 해산하기까지 남은 행정 절차들이 많다.
출연기관 청산 절차가 끝나기 전에 서울시 예산 지원을 일부라도 확보해야 TBS로선 숨통이 트인다. 현재 TBS에 남은 건 5월분에 해당하는 인건비 등 최소한의 운영비뿐이다. 추가로 예산을 받으려면 폐지된 조례를 대신할 새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 7월이면 시의회 의장과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바뀌고 8월 말엔 임시회가 열린다. 최소한 이때까진 ‘버텨야’ 시의회나 시를 다시 설득해 볼 길도 열리는 셈이다.
당장 방송을 접을 수도 없다. TBS 재허가 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돈이 없다고 방송을 중단하거나 허가권을 반납하기라도 하면 TBS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기본재산이 자본금 100만원뿐인 TBS에 95.1㎒의 황금대역 주파수는 가장 큰 자산이다.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현재 추진 중인 민영화에도 제동이 걸린다. 방송은 유지해야 하는데, 6월부터는 250여명의 직원들 월급을 주는 것도 힘들다. 이에 TBS는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 무급 순환휴직 실시 방안을 내부에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폐지 조례 시행을 앞두고 대표 사퇴 등 경영 공백을 겪은 TBS는 뒤늦게 민간 투자처를 찾아 나서는 한편, 공공기업 및 기업과의 MOU를 추진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7일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의 이성구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선임한 이후 한국소비자원, 한국공정거래조정원과 차례로 MOU를 맺고 콘텐츠 공동 기획·제작 등 다양한 협업 추진 계획을 밝혔다. 외주 제작과 협찬 등으로 수익을 늘리겠다는 계산이다. 이성구 대표 대행은 지난 13일 직원 간담회에서 TBS를 소비자 정보 마케팅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다는 구상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민영화 작업은 대표 대행 등 극소수만이 내용을 공유하며 진행 중인데, 그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상업광고 불허 조치 등 민영화에 앞서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민영화가 쉽지 않은 만큼, 분리매각과 통매각 등 가능성은 여러 갈래로 열어두고 검토 중이다. FM(95.1㎒), 영어FM(101.3㎒), TV가 각각 따로 주인을 찾거나 일부 기능이 서울시 산하기관으로 흡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분명한 건 어느 쪽이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TBS에 남은 예산과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TBS의 양대 노동조합은 21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시의회를 향해 폐국 위기만은 막아달라는 성명을 냈다. 노조는 대표 대행을 향해서도 “5월31일 이후 TBS가 어떤 상황을 맞이하며 또한 방송은 제대로 송출할 수 있는지, 방송 노동자의 생존권을 어떻게 지킬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매우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