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의 제호에 새롭다는 뜻의 '뉴' 자만 붙인 신문 발행은 부정한 경쟁행위로 위법하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발행주체가 완전히 다른 두 신문은 이미 폐업한 제주일보의 계승을 두고 수년 동안 다퉈 왔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부장판사 노현미)는 지난달 25일 '뉴제주일보'에 '제주일보' 표현이 들어간 제호 사용을 금지하고 사무실과 창고 등에 보관 중인 신문과 광고물, 명함 등도 모두 폐기하라고 판결했다. 또 회사와 대표가 연대해 제주일보에 손해배상 1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제주일보는 지난해 1월 뉴제주일보에 부정경쟁행위금지와 함께 손해배상 2억원을 청구했다. 뉴제주일보는 5일 '삼다일보'로 제호를 바꿨다.
재판부는 "뉴제주일보가 제주일보와 글씨체, 색상이 같아 앞에 새롭다는 의미의 '뉴'라는 영문 수식어만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외관이 동일하거나 상당히 유사"하고 "자본, 조직 등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오인·혼동할 우려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두 신문은 제주일보 제호 사용을 두고 수년 전부터 다퉈왔다. 신규 사업자인 뉴제주일보는 2015년 11월 제주일보를 제호로 신문 발행을 시작했다. 제주일보가 '제주신보'로 이름을 바꾸기 전 한 달 가까이 두 개의 제주일보가 발행되기도 했다. 뉴제주일보는 이후 2020년 6월 신문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했고 법원 결정 바로 다음 날부터 '뉴' 자만 붙여 신문을 계속 내왔다.
당시 뉴제주일보가 패소한 이유는 뉴제주일보가 신문 발행 전 넘겨받은 제호 사용권이 무효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두 신문이 가져가려 다툰 제호의 원래 주인은 1945년부터 이어져 왔다가 2013년 10월 폐업했다. 사주인 김대성 회장이 주식투자 등에 쓰려 회삿돈 134억원을 횡령해 부도가 났다. 윤전기와 사옥 등은 곧장 매각했지만 무형 자산인 제호는 이후 두 신문과 차례로 계약하며 복잡한 법적 문제를 낳았다.
원래의 제주일보는 2015년 8월 김 회장의 동생이자 뉴제주일보 대표인 김대형씨에게 제호 사용권을 넘겨줬다. 재판부는 제주일보가 수년째 퇴직금도 정산하지 못한 형편에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제호를 무료로 준 건 퇴사한 직원들이 받아야 할 재산을 빼돌린 사해행위라며 무효라고 판결했다. 뉴제주일보가 제호 사용권을 받기 전까지 언론과는 거리가 먼 스티로폼 상자 제조업체였다는 점도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김 회장이 부도 회사의 재산을 형제 명의로 돌리려 했다는 정황이 됐다.
지금의 제주일보는 원 제주일보 폐업 때 퇴사한 기자들이 만들었다. 이들은 제주일보를 이어가려 이사 중 한 명에게 요청해 2013년 8월 새 언론사를 만들고 매월 50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제호 사용권을 빌렸다. 이후 제주특별자치도에 제호를 등록하기도 했다. 신문법상 신규 언론사는 이미 있는 제호를 등록할 수 없지만 원 사용자가 동의한다면 할 수 있다.
뉴제주일보 측은 김 회장이 동생에게 제호 사용권을 아예 넘겨준 건 퇴직 기자들이 만든 회사에 사용권 대여를 거둬들였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제주일보가 애초 가처분을 신청할 자격 자체가 없다는 주장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 사용자의 동의를 얻어 일단 등록한 제호는 나중에 사정이 바뀌더라도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쉽게 취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신문법은 이중으로 등록한 신규사업자에 대한 행정 조치(취소·철회)에 관해 직접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법원 판단이 있기 전까지 신문법상 지위는 존속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제주일보가 제호를 쓰게 된 경위를 전반적으로 고려해 볼 때 제호를 계속 사용할 정당한 이익이 있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