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4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가운데 언론단체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해 92개 단체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1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이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고집불통, 아집을 조금도 바꾸지 않겠다는 확인 사살을 했다”고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그동안 집권여당은 방송3법, 방통위설치법 개정 논의를 철저히 외면하고, 국회의장의 중재안도 걷어차며 반대만을 외쳐왔다”며 “고집불통 윤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입법권을 가진 국민의힘은 용산의 2중대를 자처하며 ‘좌파 영구장악법’이라는 왜곡 선동으로 방송3법 개정안을 폄훼했다. 4월 총선에서 혹독한 채찍을 맞고도 공영방송을 장악하면 권력을 주야장천 누릴 것이라는 환각이 집권여당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4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대한 도전이자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행위”라며 “우리는 언론과 방송 독립, 민주주의 수호를 염원하는 각계 시민사회단체, 무수한 시민들과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에 견결히 나설 것이다. 언론장악을 시도한 정권의 말로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대통령실 대변인은 12일 언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이 방송4법의 거부권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6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방송4법에 대한 거부권을 의결한 데 따른 것이다. 대통령실은 “야당은 제21대 국회에서 부결돼 이미 폐기된 방송3법을 다시 강행처리했고, 방통위법까지 더해 공익성이 더 훼손된 방송4법 개정안을 숙의 과정 없이 일방 통과시켰다”며 “이번 거부권 행사는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훼손시키려는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대응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거부권이 행사된 방송4법은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을 행사한 끝에 폐기된 방송3법에 방통위법이 더해진 법안을 이른다. 방송3법은 KBS와 MBC, EBS 등 공영방송의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 추천권을 미디어 관련 학회, 시청자위원회, 직능단체 등에 부여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방통위법은 방송 관련 주요 사안을 의결하는 방통위 의결 정족수를 상임위원 2인에서 4인으로 늘려 ‘2인 체제’를 방지하려는 내용이 골자다.
한편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방송4법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본회의를 열어 다시 표결에 부칠 수 있지만, 통과를 위해선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200명) 찬성이라는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해서다. 결국 국회 임기 만료 전 극적으로 국민의힘과 타협하지 않는 한 방송4법 처리는 불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