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하려 하자 한국프레스센터를 관리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기자회견장 사용을 하루 전날 취소했다. 시국선언 내용을 보건대 ‘정치행사’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장소에서 시국선언을 한 시민단체는 “윤석열 정권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고 언론재단은 이전에도 정치적인 기자회견은 대관을 불허해 왔다고 설명했다.
언론재단은 19일 오후 전국비상시국회의에 다음날 오전 예정된 기자회견장 사용을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각계 민주화 원로들이 모인 시민단체인 시국회의는 윤석열 정부의 친일적 역사인식과 의료대란, 공영방송 장악 시도 등 실정을 규탄하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20일 오전 서울시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진행할 계획이었다.
언론재단은 시국선언이 기자회견 형식으로 이뤄지지만 내용상 정치행사라고 판단했다. 언론재단의 대관 서비스 이용지침을 보면 영업행위와 종교행사 외에도 “창당, 전당대회, 당원교육 등의 정치행사”는 대관 신청을 받아주지 않거나 승인한 뒤에도 취소할 수 있다. 대관이 가능한 행사는 ‘언론계 행사’나 ‘공청회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토론회’ 등이 원칙으로 “기타 운영 목적에 부적합한 행사”인지 “판단은 전적으로 재단에서 한다”는 규정도 있다.
시국회의는 대관을 신청한 4일 행사계획서도 미리 보냈는데 행사 전날에서야 취소를 통보하는 건 부당하다고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언론재단은 19일 오후 시국회의 측에 보낸 이메일에서 “10일과 11일 두 차례 행사계획서를 요청하였고 받은 계획서 상으로는 세부적인 내용이 없어 정치행사라고 판단하지 않아 접수했었다”며 “그러나 행사내용을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했다”며 취소 이유를 알렸다.
시국회의가 보낸 행사계획서에는 시국선언 내용에 대해 “의료대란,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대한 무대책, 민생파탄으로 상식과 정상이 사라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걱정하는 민주화 원로들이 나서 국민들에게 드리는 고언”으로만 설명돼 있다. 언론재단은 시국회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국선언 전문을 보고 주요 내용이 윤 대통령 퇴진 요구임을 확인하자 급히 대관을 취소한 것이다.
시국회의는 언론재단이 대관을 취소하자 20일 오전 프레스센터에 있는 김효재 언론재단 이사장실 앞을 찾아가 20여 분 동안 항의한 끝에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이번 시국선언은 “(정당행사와 같은) 정치행사가 아니라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기자회견”이라는 것이다.
언론재단은 기자회견 내용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경우에는 이전에도 대관을 취소해 왔다고 설명했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지난해 2월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정권위기 탈출용 공안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할 때 대관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22년 11월에도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발족 기자회견’이 있어 정치적 문제가 될 수 있어 취소를 요청했는데 주최 측에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언론재단은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에 따라 윤 대통령이 취임한 2022년 이전에도 기자회견장 대관 예약을 취소한 적이 있는지 파악해 다음 주까지 제출할 계획이다.
시국회의는 결국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인접한 천주교 성프란치스코회 교육회관에서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 이사장은 “프레스센터는 한국 언론의 요람인데 민주정권일 때는 극우 보수 세력의 기자회견도 용납됐다”며 “시국선언이 프레스센터에서 발표되지 못하는 현실이 한국 언론의 현실이고 윤석열 정권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