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민원 사주’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에 불출석한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청문회가 열리는 시각 중대발표를 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텔레그램 측과 직접 만나 딥페이크 등 디지털성범죄 차단을 논의했다는 건데, 정작 류 위원장은 준비된 원고만 읽고 질문은 받지 않은 채 퇴장했다.
류 위원장은 30일 오전 서울시 양천구 방심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텔레그램 측과 업무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방심위 실무자들이 27일부터 이틀 동안 텔레그램 고위 책임자를 제3국에서 비밀리에 만난 결과, 텔레그램 측이 “디지털성범죄 외에도 성매매·마약· 도박 등 불법정보 차단에도 협력”하고 “한국 경찰과 전향적으로 협의”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류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한 알림은 13시간 전인 휴일 밤 9시쯤 기자들에게 급히 발송됐다. 류 위원장은 이날 오전 ‘방심위원장의 청부 민원과 공익신고자 탄압 등의 진상규명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돼 있었다. 류 위원장은 청문회가 부당하고 불공정하다며 25일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류 위원장이 공식 석상에서 기자들을 만난 건 지난해 7월 위촉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지만 류 위원장은 4분가량 모두발언만 낭독한 뒤 퇴장했다. 질문을 받고 가 달라는 MBC 기자의 요청에 류 위원장은 다음 일정이 있다고만 짧게 답했다. 류 위원장은 1시간 뒤 기자회견이 열린 같은 장소에서 동아방송예술대와 업무협약식이 예정돼 있었다.
이후 기자회견은 실무자와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청문회가 있는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브리핑이 열려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동수 디지털성범죄심의국장은 “실무진 입장에서 청문회 관련 질문은 답변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저희는 출장을 다녀왔고 중요한 일이라 발표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방심위가 발표한 성과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류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텔레그램 측은 한국 경찰청·방심위와 전향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은 이용자 정보보안과 감시받지 않는 통신의 자유를 강조하며 그동안 각국의 수사 협조 요청에도 일절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경찰과 협의하겠다고 했다면 매우 이례적이다.
텔레그램 측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사 협조를 할 수 있다고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 국장은 “그 얘기는 방심위가 구체적으로 나열하긴 사실 좀 힘든 부분”이라며 다만 “범죄에 연루된 사람은 텔레그램 측에서 사용자의 인터넷 주소라든지 전화번호 정도는 아마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방심위는 5월에도 류 위원장이 미국 구글 본사를 방문해 유튜브의 유해 동영상을 차단하겠다는 구글 측의 ‘약속’을 받아냈다고 성과를 발표했다가 사실관계를 놓고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발표 이후 구글 코리아 직원들이 방심위를 찾아 항의성 의사를 전달한 듯하지만 당시 구글 측은 방문 목적을 언론에 밝히지 않았고 방심위도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방심위는 3일 텔레그램 측과 공식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를 받았고, 25일 기준 지금까지 디지털성범죄물 148건을 삭제 요청해 모두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은 2019년 ‘N번방’ 사건 당시부터 방심위의 불법 영상물 삭제 요구에 응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