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사명감이었다. 파면 팔수록 ‘더 늦기 전에 실상을 알려야겠다’는 열의가 솟았다. 취재는 중국계 수집상들이 구리 스크랩을 싹쓸이해 헐값에 중국으로 넘기고 있다는 제보에서 비롯됐다. 과연 구리 제품 제조 현장에서 겪고 있는 피해는 심각했다. 중소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웃돈을 주고라도 구리 스크랩을 구하느라 급급했다. 고작 1~2% 이윤으로 연명하는 중소업체들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전방위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구리 제조업이 휘청일 수 있는 사안이었다.
사명감을 느낀 건 기자만이 아니었다. 첫 기사를 내보내자마자 부산본부세관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중국계 수집상의 정보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수사 의지도 충만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편견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였다. 세관은 기자가 제공한 리스트를 바탕으로 8개 업체를 적발했다. 수출 신고 가격을 낮게 조작해 얻은 차액 3743억원을 추징하고, 수출 대기 중이던 약 40t 규모의 구리 스크랩을 압수했다. 기자는 후속 기사를 통해 이런 내용을 낱낱이 전달했다. 막대한 규모의 국부 유출을 막는 데 일조한 이번 취재는 25년의 기자 경력을 통틀어 가장 짜릿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