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경영 위기를 호소하며 임원진의 4분기 급여 20% 반납 결정을 알린 지 이틀 만에 직원들에게 연차휴가 소진을 촉구해 반발을 사고 있다. 연차휴가를 쓰고 싶어도 다 쓰지 못할뿐더러 만일 연차 강제 사용으로 보상(연차수당)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임금 상당액이 삭감되는 셈인데 사측이 “자발적인 참여”란 말로 에둘러 “겁박”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SBS 노조는 “‘사장과 임원이 이렇게 했는데 직원도 따르라’는 사측의 비루함에 실소가 나올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SBS는 16일 인사팀장 명의로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2024년 잔여 연차휴가 사용 및 소진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올해 창사 이래 가장 저조한 광고 매출과 8년 만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사장 이하 경영진의 4분기 급여 20% 반납 결정을 알린 지 이틀 만이다. 인사팀장은 공지 메일에서 1997년 IFM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론하며 “다시 한번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차휴가 사용은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며 “연차 사용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고 회사의 수지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사장과 임원도 희생했는데 너희도 희생하라’는 강요”라며 반발했다. SBS본부는 17일 ‘임원들 손톱 내주고 직원들 뼈를 깎으려는 움직임, 엄중 경고한다’는 제하의 성명을 내고 “경영실패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지난 6월 시행된 1차 비상경영에 이어 임원 급여 반납, 연차 소진 촉구 메일 등 “사측의 일련의 행위가 군사 작전 수행하듯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봤다. SBS본부는 “몇 달 전부터 본사, 자회사 할 것 없이 회사 곳곳에서 직원들은 ‘마른 수건 쥐어짜기식’의 비용 절감을 강요당하고 있다”면서 “도대체 우리가 뭘 더 내놔야 한단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SBS 경영위원회는 14일 임원들의 급여 20% 반납 결정을 전하며 “경영진 스스로가 느끼고 내가 가진 것부터 먼저 내려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인적, 조직적 전력투구의 징표”라고 희생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런데 4분기 급여 20%는 연간 급여 기준으로는 5%에 해당한다. SBS본부는 “연차 11일 보상비”도 “기본급 5%에 달한다”고 밝혔다.
노조 “경영실패 이유 설명하고 양해 구하는 게 먼저”
SBS본부는 “회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경영실패에 대해 직원들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라며 “2023년 346억 흑자에서, 1년 만에 적자(예상)로 드라마틱하게 추락한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새천년이 될 때부터 우려해온 ‘미디어 업계의 광고시장 축소’ 핑계만 댈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또 “같은 광고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올림픽 중계도 같이한 경쟁사는 수백억 흑자가 예상되는데, 왜 우리만 적자란 말인가”라고 물었다. MBC는 올 상반기 지상파 방송사 광고 점유율이 1998년 이후 최고치(25.4%)를 기록하며 8월 잠정 집계 기준 186억원 흑자(상반기)를 기록했다.
SBS본부는 경영진을 향해 “헝그리정신만 내세우며 직원들 밥값-업무추진비-시간외수당 한 푼 두 푼 줄여서 회계상 적자를 면하는 회사가 아닌, 새로운 비전과 창조적인 콘텐츠로 방송업계를 선도하고 경쟁사를 압도하는 정신”을 요구하며 “‘폼 잡지 말라’ ‘허세부리지 말라’며 사측이 ‘윽박의 리더십’을 내세울 게 아니라, ‘혁신의 리더십’으로 직원들을 이끌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이번 기습 공지를 시발점으로 연차 소진을 강요하는 등의 근로조건을 후퇴시키는 하나의 사례라도 벌어진다면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