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유니폼이 야구장을 수놓다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가을야구 시즌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플레이오프까지 야구장에 팬들이 꽉꽉 들어찼다. 광주(KIA 타이거즈)와 대구(삼성 라이온즈)를 오가면서 치르게 되는 한국시리즈도 표 구하기 전쟁이다. 주위에서는 “야구장 티켓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라고 호소한다. 정규 시즌 때 2만원가량 하던 블루석이 6만5000원에, 8500원 하던 외야석이 3만원에 판매(잠실야구장 플레이오프 기준)되는 데도 이렇다. 그만큼 프로야구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1982년 출범 뒤 첫 1000만 관중 돌파(최종 1088만7705명·평균 관중 1만5122명)가 괜히 이뤄진 게 아니다.


야구장 ‘직관’ 팬들의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는 대다수가 같은 색 옷을 착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시즌만 놓고 보면 직관 팬의 80~90%가 응원 팀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특히 플레이오프 1, 2차전이 열린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는 삼성 홈, 원정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구장을 거의 점령했다.


삼성 라이온즈 구단 김남형 마케팅 팀장은 이에 대해 “포스트시즌만 보면 KBO리그 팬들이 오히려 메이저리그(MLB)보다 더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것 같다”라면서 “요즘 팬들이 자신의 응원 팀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거리낌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응원 팀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은 극소수였다. 유니폼을 착용하더라도 야구장에서만 입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야구가 있는 날이면 기차역에서, 지하철역에서 야구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당히 응원 팀을 드러내고, 응원 선수를 밝힌다. 유니폼의 경우 마킹지(번호·이름 새김 용지)까지 포함해서 금액이 15만원 상당에 이르지만 종종 품절이 되어서 구하기 힘들 때가 많다. 김도영의 KBO리그 역대 최초 월간 ‘10(홈런)-10(도루)’ 기념 티셔츠는 5만장 이상이 예약되기도 했다.


야구장 유니폼 문화는 2010년 이후 조금씩 늘어나더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더욱 확산됐다. 원하는 굿즈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2030 MZ세대가 야구장으로 몰린 영향이 있다. 고약한 바이러스 시대에 겪은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 금지 등에 대한 보복 심리로 다 같이 모여서 다 함께 큰 목소리로 같은 팀을 응원하는 야구장으로 이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예년 같으면 순위가 거의 결정이 되는 9, 10월에는 관중이 줄어들기 마련인데 올해는 정규 시즌 끝까지 꾸준하게 관중이 들어찬 게 그 증거다. 주말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평균 1만3000명에 가까운 팬들이 야구장을 찾기도 했다.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경기 그 자체를 즐기는 팬들이 늘어났다. 야구장은 놀이터가 됐고, 그 놀이터의 필수품은 이제 유니폼이 됐다.


2002년 축구 한일월드컵 때 전 국민은 빨간색 옷을 입고 다 함께 붉은악마가 돼 “대한민국”을 외쳤다. 2024년 가을야구 마지막 무대에서는 다 함께 빨간색, 혹은 흰색 KIA 유니폼을 입고 ‘삐끼 삐끼’ 춤(KIA 투수가 삼진을 잡을 때마다 추는 춤)을 추고 다 함께 파란색, 혹은 흰색 삼성 유니폼을 입고 “엘도라도”(삼성 응원가)를 부르고 있다. 코로나19 암흑기를 거치면서 ‘함께 하는 그 무엇’에 대한 그리움이 이렇게 표출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