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분리징수, 한강 노벨상 낭보… 난데없는 계엄령까지

기자협회보 선정 '2024 미디어 10대 뉴스'

① 45년 만의 비상계엄과 언론통제 포고령, 그리고 탄핵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이란 두 글자를 다시 맞닥뜨릴 거라 누가 생각했을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보고 “딥페이크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던, 그야말로 느닷없는 계엄 선포에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떨리는 손과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으면서도 누군가는 국회로 달려갔고, 의원들 진입을 막으려는 경찰과 무장한 군인에 맞섰다. 그 사이 회의장에 당도한 여야 의원 190명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빠르게 통과시키면서 계엄 상황은 2시간30분여 만에 사실상 종료됐다.


하지만 내란 혐의에 2차 계엄 우려 등으로 대통령의 직무를 당장 정지시킬 필요성이 커졌고, 야당은 즉각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다. 헌정 질서보다 당을 우선하며 투표 자체를 거부한 여당 의원 105명 탓에 지체됐던 탄핵안 처리는 계엄 선포 11일 만인 14일, 찬성 204표로 가결되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윤 대통령은 “두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며 항변했지만, 그 두 시간 사이에 국민은 지옥을 오갔고, 환율 급등과 코스피 급락 등 경제와 외교, 안보 전반에 미친 악영향은 셈할 수조차 없다. 무엇보다 모든 언론 활동을 군부의 통제하에 두고 위반 시 ‘처단’하도록 한 ‘포고령 1호’의 섬뜩함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② TBS 폐지 조례 시행… 폐국 위기 현실로

설마 했던 일이 그대로 현실이 됐다. 2022년 11월 TBS에 대한 지원을 폐지하는 조례가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도, 지난해 말 조례 시행을 5개월 유예하는 결정을 했을 때도 정말 이렇게 끝나버릴 줄은 몰랐다. 어떤 호소도, 읍소도 통하지 않는 서울시의회의 강고한 벽에 가로막혀 TBS는 6월1일부터 서울시 예산 지원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됐고, 9월11일부로는 서울시 출연기관 지위마저 잃었다. 상업광고 불허 등의 제한 탓에 홀로서기도, 매각도 막막했던 TBS는 기부라도 받을 수 있게 비영리법인 등으로 정관 개정을 허가해 달라고 방송통신위원회에 신청했으나, 이마저도 반려됐다.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을 위해 6월부터 무급 순환휴직을 시행한 TBS는 9월부터는 임금을 한 푼도 주지 못하고 있으며, 희망퇴직에 이어 정리해고 등 대규모 구조조정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도 방송만큼은 중단할 수 없다는 의지로 겨우 버티고는 있지만, 이 또한 언제 멈춰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TBS 사태는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지만, 여야의 ‘네 탓’ 공방 수준에 머물렀다. 서울시장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도, 야당도 안타까움을 표하긴 했으나, 이렇다 할 해법은 내놓지 못한다. 이 연말, TBS가 바랄 수 있는 건 정말 기적뿐일까.

③ ‘파우치 앵커’ 박장범 KBS 사장 임명과 보도 위축

“대통령 ‘술 친구’가 ‘파우치 앵커’에 밀렸다.”


10월23일 차기 KBS 사장으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조그마한 파우치’로 지칭한 박장범 KBS 앵커가 내정되자 이 같은 헤드라인이 연일 오르내렸다. KBS 기자 495명의 사장 후보 사퇴 촉구 연명 성명 등 내부 구성원의 강한 반발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11월23일 박장범 사장 후보를 27대 KBS 사장으로 임명했다. 김의철 사장 해임 이후 보궐 사장으로 취임한 박민 체제 1년 동안 KBS 뉴스·프로그램 경쟁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올해만 해도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사태, ‘총선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극우 유튜버 시사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기용 등으로 수많은 내부 반발을 일으켰다. 박장범 사장 취임 직전 터진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KBS 보도를 두고도 “보도 참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연임에 도전한 박민 전 사장은 박장범 사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박장범 사장에 대한 내부 구성원의 우려는 전임 사장 때와 같다. 그도 그럴 게 박장범 사장은 취임 첫날 단체협약, 편성규약에 명시된 임명동의제를 무시하고 보도국장 등 주요 국장 인사 발령을 강행했다. KBS 기자들은 “용산만 바라보던 전임자 박민에 이어, 똑같이 용산만 바라볼 거라는 우려는 취임 첫날부터 현실이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은 탄핵 재판을 앞두고 있다. 박장범 사장은 3년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④ TV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과 통합징수 법안 발의

‘분리징수 유지’ ‘통합징수로 회귀’ TV 수신료 행방은 어떻게 될까. “정부가 돈줄을 죄어 공영방송을 길들이려 한다”는 비판에도 지난해 7월 정부는 KBS와 EBS의 공적 재원인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을 공포·시행했다. 당시 분리징수를 시행할 경우 납부 회피 등으로 순수입이 급감할 거라는 우려가 나왔음에도 제도적 보완을 마련할 여지도 없이 시행령 개정이 단행되며 1년이 지난 올해 7월에야 KBS는 수신료 분리고지·징수를 전격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KBS는 재정 악화가 확실시된다며 1770여명 대상 특별명예퇴직과 수신료국 대규모 인력 파견을 시행했고, 인건비 삭감 등을 추진하며 구성원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했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KBS엔 수신료 통합징수 법안이 유일한 희망이다. 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TV 수신료 통합고지를 의무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17일 법제사법위원회도 개정안을 의결했다. “위탁받은 자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때에는 지정받은 자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한다”는 항목을 신설해 수신료 고지 징수 방식을 법으로 보장하는 내용이다. 개정안 과방위 통과 당시 박민 체제 KBS는 “결합징수를 요구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의견만 피력해 구성원의 강한 반발을 샀다. 박장범 사장은 취임사에서 “현재 국회에서 진행 중인 수신료 관련 입법 논의에도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⑤ 방통위원장 첫 탄핵소추안 통과… ‘1인 체제’ 된 방통위

방송통신위원회는 올 한해 가장 시끄러운 행정기관 중 한 곳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리꽂은 김홍일 방통위원장은 ‘2인 체제’서 YTN 최다액출자자 변경 승인 등 주요 안건 의결을 남발하다 국회 탄핵소추안 보고 직전 자진 사퇴했고, 뒤이어 임명된 이진숙 위원장은 취임 당일 무리하게 공영방송 이사 후보를 선임했다가 사흘 만에 탄핵소추를 당했다. 이후 방통위는 4개월 넘게 ‘1인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사상 첫 방통위원장 탄핵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고 있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에서 두 차례 심리가 진행됐는데, 2인 체제서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한 행위가 적법한지를 두고 국회와 이진숙 위원장 측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일단 서울행정법원은 방통위 이사 임명에 제동을 걸었다. 행정법원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낸 이사 임명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며, 2인 체제 방통위가 임명한 이사들이 임기를 시작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서울고등법원도 1심의 집행정지 인용 결정을 유지하며 2인 체제 의결의 위법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헌재는 어떤 결론을 내릴까. 3차 변론 기일은 2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⑥ 방심위 ‘과잉·정치심의’ 논란 속 류희림 위원장 연임

퇴임식 없이 임기를 끝냈다가 직원들도 모르게 연임한 기관장.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7월 연임했다. 오후 7시쯤 모두가 퇴근한 뒤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근 채 5분 만에 자신을 위원장으로 다시 호선했다. 한발 늦은 노조원들이 항의하며 퇴근길을 막았지만 관용차에서 내린 류 위원장은 도로 중앙으로 뛰어 들어가 택시를 타고 떠났다. 직원들은 류 위원장이 자리를 훔친 도둑이라며 위원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류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두고 비속어를 썼다는 MBC 보도에 4월 과징금 3000만원을 의결했다. 지난해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보도’ 제재에 이어 과잉·정치심의 비판을 불렀다. 사과하고 반성하는 방송사에는 가벼운 징계를 주고, ‘바이든’이 맞을 수도 있다고 항변하면 중징계해 언론통제 행태도 보였다.


방송뿐 아니라 인터넷 분야에도 과잉·정치심의 논란이 계속됐다. 방심위는 2월 윤 대통령이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처럼 짜깁기 된 풍자 영상을 삭제하고, 이달에는 민주노총에서 만든 탄핵 촉구 문자행동 사이트 삭제요구를 의결하면서 검열 비판을 받았다.


이런 방심위가 위촉한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도 역대 최다 법정제재를 남발하며 언론 탄압 논란을 일으켰다. 선방위의 집중 표적인 된 건 MBC로 법정제재 30건 중 무려 17건이 MBC였다.

⑦ 한강 노벨문학상 쾌거… 들썩인 언론사들

분노와 우울감을 준 수많은 뉴스 사이 10월10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란 기쁜 소식이 국민들에게 찾아왔다.


올해 한국 작가의 수상을 누구도 예상치 못한 터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작가 첫 수상이란 낭보에 언론사, 기자들도 들썩였다. 이날 정신없이 수상 소식을 타전한 기자들은 인터뷰, 작품세계, 출판계·시민 반응, 외신 분위기 등을 지속 전하며 상당 기간 “기분 좋은 바쁨”을 경험했다. 매일경제신문은 다음 날 신문에 작가가 직접 답변한 내용을 포함한 인터뷰를 게재하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점에 긴 줄이 늘어서는 등 사회적으론 ‘독서 열풍’도 이어졌다.


언론계는 노벨문학상 시상식 취재를 위해 스웨덴으로 기자를 파견하는 경험도 했다. 시상식을 앞두고 12·3 비상계엄 사태가 터져 혼란스러웠던 상황에서 기자들이 전해온 한강 작가의 수상 모습과 발언은 위안을 주기도 했다. 기자간담회, 강연, 시상식에서 한강 작가는 “무력이나 강압에 의해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 “가장 어두운 밤에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는 언어가 있다” 등 발언을 했다.

⑧ 발언 진위 확인 안되는데 정정보도? ‘바이든·날리면’ 판결

1월 서부지방법원은 MBC에 정정보도를 명령했다. 정정 문구는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이다.


2022년 9월 미국 순방 중 윤 대통령 발언이 무엇이었는지는 꼬박 1년 넘게 음성 감정을 거쳤는데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신 간접적인 정황을 근거로 MBC 보도가 ‘허위’라고 판결했다. 발언의 맥락으로 봐서 바이든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를 상대로 이 사건 발언을 했다고 봄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연스럽다’와 ‘밝혀졌다’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2심 재판부는 발언이 어떻게 ‘들리는지’가 아니라 뭐라고 ‘말했는지’ 확인해 보자며 당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던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진술서를 제출받았다. 대통령이 문제의 그날 김 의원에게 말해주길 자기 발언은 ‘날리면’이었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 자신은 미국 ‘의회’와 한국 ‘국회’를 구분해 말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11월7일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의회를 가리켜 ‘국회’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MBC 측은 위증 책임을 지울 수 있으려면 김 의원을 증인으로 법정에 불러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 심리를 끝내고 선고하려던 재판부는 MBC 측의 간곡한 요청으로 내년 1월 마지막 변론기일을 열기로 했다.

⑨ 여성기자 딥페이크 합성 파문… ‘성희롱’ 조선 논설위원 파면

‘딥페이크’ 성범죄가 기승을 부린 올해 텔레그램에선 ‘기자 합성방’이 만들어져 우려를 낳았다. 딥페이크 문제를 다룬 여성 기자들의 얼굴 사진이 공유되고 외모 조롱, 성적 이미지와 합성 등이 이뤄진 성폭력이었다. 이에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 등은 “여성 기자들의 인격권 침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폭력 행위”라 비판하며 즉각적인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또한, 플랫폼 사업자를 향해서도 범죄 행위 차단을 위한 기술적 조치 강화 등을 요구했다.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채팅을 통해 성희롱한 남성 기자들이 잇따라 중징계를 받는 일도 있었다. 남성 정치부 기자 3명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동료 여성 기자, 정치인에 대해 외모 품평, 성적 조롱·욕설을 한 사실이 7월 드러나 해고(해임), 정직 6개월 등 중징계 처분이 내려졌고, 한국기자협회는 가해 기자들을 영구제명했다.


조선일보 현직 논설위원이 국가정보원 직원과 여성 기자 사진을 공유하고 성희롱 문자 대화를 나눴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큰 파문을 일으킨 끝에 파면해임되기도 했다. 언론계로선 변해가는 시대에 발맞춰 성폭력 피해 기자들에 대해 어떤 조처를 내리고 대응할지, 더불어 기자 개개인 대상 성인지 교육 강화, 성차별적 언행에 대한 강력한 징계 시스템 마련 등 안팎으로 과제를 안게 된 이슈였다.

⑩ 언론사 만성적자… 명예퇴직, 구조조정 등 칼바람

언론사에 가장 중요한 자원을 묻는다면 업의 특성상 누구든 인력을 꼽을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자원이 점점 천대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지난해 연말 JTBC를 시작으로 올해 KBS, SBS미디어넷, TBS, 스포츠서울 등에선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의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KBS는 2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특별명예퇴직·희망퇴직을 시행해 110여명의 직원이 나갔고, 스포츠서울에서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등으로 15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구조조정의 이유는 언론사별로 비슷했다. 세부적인 사정이야 조금씩 다르지만 ‘적자로 인한 경영위기’를 내세운 점은 같았다. 희망퇴직으로 시작했다가 목표 인원이 채워지지 않자 구조조정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 행위 역시 비슷했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데 경영 논리로 동료를 떠나보내면서 뉴스룸 구성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상황이다. 인력 감축 후에 또다시 회사가 구조조정을 시행할 수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능력 있는 동료들의 이탈로 조직의 경쟁력이 떨어질 거란 우려, “직원 희생만 강요”하는 회사에 대한 반감 역시 커지고 있다. 내년에도 동료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까.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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