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히기 전에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추 대표님과 소통했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의원님들이 있어서 당사로 모이라고 하시네요.”
“경찰이 적극적으로 막지 않습니다. 가능하신 분들은 담 넘어 와주세요.”
“당 대표 한동훈입니다. 본회의장으로 모두 모이십시오. 당 대표 지시입니다.”
“못 들어가고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봉변당했어요.”
“국회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 중앙당사에 모여있습니다.”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바로 입장을 내어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했다. 그런데 약 2시간 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단 18명뿐이었다. 나머지 90명의 의원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나. 당시 추경호 원내대표가 비상의원총회 개최 장소를 계속 바꾸면서 혼선을 빚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는데, 그날 밤 상황을 그려볼 수 있는 단서가 공개됐다.
TV조선은 18일 저녁 ‘뉴스9’에서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부터 본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이 의결될 때까지 국민의힘 의원 SNS 단체 대화방에서 오간 대화록을 입수해 보도하고, 온라인에 그 전문을 공개했다. 한겨레가 전날(17일) 해당 대화방 내역 일부를 공개해 보도한 이후, 권성동 국힘 당 대표 권한대행이 18일 “있는 그대로 보도된 게 아니라 편집을 해서 보도됐다”면서 언론중재위 제소 방침을 밝히는 한편 “다른 언론사에서도 그 캡처본을 인용해서 기사 작성을 하지 말기를 부탁드리겠다”고 했는데, TV조선은 아예 전문을 공개한 것이다.
대화록 전문에는 국힘 의원들이 3일 밤부터 약 2시간 동안 우왕좌왕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시작은 3일 밤 10시29분, 박수영 의원이 올린 “비상계엄 선포” 여섯 글자였다. 이에 김소희 의원이 “민주당은 바로 국회 소집한다는데.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라고 묻고, 친윤계 권영세 의원은 “그러게. 비상으로 국회해산이라도 하겠단 건가?”라고 말한다.
밤 10시49분. 의원이 아니어서 해당 대화방에 참여하지 못한 한동훈 대표의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과 함께 막겠습니다”란 메시지가 박수영 의원을 통해 공유된다. 이어 주진우 의원이 “우리도 긴급의총 소집해야 할 사안”, 서지영 의원이 “지도부에서 빠른 입장을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송언석 의원이 “비상의총은 언제 어디서 하는 건가요?”라며 지도부를 재촉한다.
밤 11시3분이 되어서야 추경호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비상의총을 개최한다고 해당 대화방이 아닌 문자메시지로 전달한다. 이후 국회가 봉쇄됐다는 소식이 공유되자 추 원내대표는 11시9분 문자메시지로 비상의총 장소를 국회에서 당사로 변경한다. 11시24분, “즉시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담을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는 상황”이라는 한동훈 대표의 메시지가 주진우 의원을 통해 전달된다.
밤 11시33분, 추 원내대표는 비상의총 장소를 다시 당사에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꾼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해당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는지 송언석 의원은 “당사에서 모이는 것 맞지요?”라고 묻는다. 11시41분 최형두 의원이 ‘잠시 후 비상의원총회를 개최하오니 의원님들께서는 지금 즉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추 원내대표 문자메시지를 대화방에 공유한다.
이어 국회에 도착한 의원들이 출입이 안 된다고 토로하며 출입 가능한 장소 등을 서로 공유했다. 우재준 의원은 “막히기 전에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다”며 “담 넘어서라도 와달라”고 한다. 그런데 11시57분, 조정훈 의원이 “지금 추 대표님과 소통했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의원님들이 있어서 당사로 모이라고 하시네요”라고 올렸다.
밤 0시3분, 추 원내대표가 문자로 비상의총 장소를 당사 3층으로 변경해 재공지한다. 0시4분 박형수 의원은 “메시지에 혼선이 있으면 안된다”며 “추 대표님께서 직접 말씀해 달라”고 한다. 박대출 의원도 “추경호 원내대표가 정리해달라”, 김희정 의원도 “집결 장소 명확히 해달라”고 하는 와중에 한지아 의원이 “집결 장소는 국회 본회의장 휴게실”이라고 전한다.
0시7분 한동훈 당 대표 비서실장인 박정하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으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와야 한다”고 하고, 이어 우재준 의원도 당 대표 지시사항이라며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하는데 “예결위장 도착했는데 아무도 안 계시네요”라는 송언석 의원, “중앙당사”라는 박덕흠 의원 글이 이어진다. 이 와중에 김장겸 의원은 “(국회에) 못 들어가고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봉변당했다”고 토로했다.
0시30분. 김정재 의원은 “국회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 중앙당사에 모여 있다”며 “의원님들 50여명 계신다”고 했다. 마산에서 올라와 뒤늦게 도착한 최형두 의원이 1시11분 “담 넘어왔다”고 했지만, 이미 10분 전 계엄해제 요구안이 통과된 상태였다.
TV조선은 “(이날) 추 원내대표는 모두 8차례 문자메시지 공지를 발송했지만, 대화방엔 별도 답을 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는 대화방에서 주로 소식을 공유하던 의원들 사이에 혼선을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대화록을 공유하며 TV조선은 “당시 언제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라며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