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의 인기 시리즈 ‘무빙’을 MBC에서 보고, SBS 인기 예능 ‘런닝맨’을 넷플릭스에서 본다.
지상파 방송과 글로벌 OTT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국내 콘텐츠 시장의 강력한 포식자인 글로벌 OTT와 손을 맞잡고 나섰다. 이전에도 지상파 제작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공급한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젠 전략적 파트너로 한발 더 나아가는 모양새다. OTT 등 온라인 스트리밍 중심으로 급변한 미디어 환경에서 이제는 ‘생존’이 화두가 된 지상파 업계의 고민이 엿보인다.
“TV 벗어나겠다”던 SBS, 넷플릭스와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SBS는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넷플릭스와 콘텐츠 공급 관련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창사 34주년 기념식에서 방문진 SBS 사장은 “‘TV를 벗어나라’ ‘대한민국을 벗어나라’는 슬로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플랫폼 사업자와의 협업과 전 세계 콘텐츠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수익화” 방침을 밝혔는데, 그 파트너 중 하나가 넷플릭스였던 것이다. 방 사장은 당시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은 물론, 잘 만들어진 콘텐츠를 보게 만드는 구조와 힘, 그것이 앞으로의 우리 생존 역량이자 성장 동력”이라고 말했다.
SBS와 넷플릭스가 체결한 파트너십은 △SBS 신작 및 기존 드라마,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국내 넷플릭스 회원들에게 제공 △SBS 신작 드라마 중 일부를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 1월부터 넷플릭스에서 ‘런닝맨’, ‘그것이 알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골 때리는 그녀들’ 등 SBS의 인기 예능 및 교양 프로그램은 물론, ‘모래시계’, ‘스토브리그’ 같은 옛날 인기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계약 기간은 내년 1월1일부터 6년이다.
SBS는 “이번 파트너십은 양사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시너지를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며 “SBS는 콘텐츠의 글로벌 확장을 도모하고, 넷플릭스는 구독의 가치 실현과 회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해당 보도자료에서 방문신 SBS 사장은 “이번 협약은 ‘지상파 TV를 넘어 글로벌로 가자’는 SBS의 미래전략에 기반한 것”이라며 “이번 협약이 시청자 접점을 늘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계약 사항이 20일 공시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SBS 주가는 치솟았고, 20일에 이어 2거래일 연속 가격제한폭까지 뛰면서 23일 2만6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날 기업분석 리포트에서 최장 기간(6년) 계약에 글로벌 최초로 방송사 편성 전체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전례가 없는 역대급 계약”이라고 평가하며 “광고 업황의 특별한 회복 없이도 2027년 내 영업이익 1000억원 내외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BS와 넷플릭스의 관계가 경쟁자에서 동반자로 변하면서 ‘넷플릭스 대항마’로 지상파 3사가 공동 출자해 만든 ‘토종 OTT’ 웨이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쏠린다. SBS에 이어 KBS와 MBC 중 한 곳이라도 더 ‘이탈’하면 웨이브는 사실상 지상파 실시간 시청 외에는 크게 경쟁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웨이브의 경쟁력 약화는 현재 진행 중인 티빙(tving)과의 합병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MBC,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22일부터 전편 방송
한편 ‘피지컬100’, ‘나는 신이다’, ‘피의 게임’ 등 자체 리소스로 제작한 콘텐츠를 넷플릭스 등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OTT와의 ‘윈윈’ 가능성을 타진했던 MBC는 이번엔 거꾸로 글로벌 OTT 오리지널 콘텐츠를 자사 채널에서 선보인다.
MBC는 지난해 8월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돼 인기를 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전편 방송을 확정하고 22일 첫선을 보였다. MBC는 앞서 5일 낸 보도자료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글로벌 OTT와 국내 지상파 방송의 첫 협업사례인 만큼 업계의 관심도 매우 뜨겁다”고 전하며 “이번 협업은 보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양사의 바람을 담았으며, 무료·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과 유료·구독 OTT 플랫폼의 수급 제휴를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보다 폭넓은 시청자층에게 선보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MBC는 22일 무빙 첫 방송을 시작으로 24일까지 3일간 8회차까지 편성한 뒤, 1월부터 주 1회 2회차씩 일요일 밤 시간대에 편성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