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아우라(aura)’는 무시무시한 단어다. 무슨 뜻이냐고? 백과사전의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 사람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이러니, 아우라란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카리스마(charisma)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지를 지칭하는 것일 터.
올해 여든다섯이 된 영화배우 알 파치노. 그의 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휘는 ‘아우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하다.
시시껄렁한 싸구려 건달로 분했을 때, 뉴욕으로 옮겨간 이탈리아 마피아의 우두머리를 연기할 때, 20세기 말 세상을 절멸시키려는 악마로 등장했을 때…. 그는 배역에 따라 눈빛과 몸짓을 능수능란 바꾼다.
때론 젊은 깡패 같고, 어느 땐 조직폭력배 두목 같고, 드물게는 진짜 악마 같다. “배우로서의 그는 돌올하고 탁월하다”는 영화평론가의 말에 감히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2004년이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전인권 콘서트가 열렸다. 당시 내 나이 서른셋, 전인권은 공자가 말한 바 지천명(知天命). 쉰이었다.
대상포진으로 입술 아래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최악의 컨디션임에도 전인권은 ‘당장 죽어도 좋다’는 듯 절규했다.
그날, 전인권의 노래를 들으며 어떤 짐승을 떠올린 건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포효를 멈추면 숨이 끊기는 운명을 지닌 아마존 정글의 전설 속 맹수.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선글라스 속에선 내내 아우라가 번득였다. 전인권이 아니면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음식 이야기’를 한다면서 잡설이 길었다. 폐일언.
경상북도 영덕과 봉화, 울진 등지에서 귀물(貴物)로 대접받는 ‘어떤 버섯’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서설이 과했다.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은 ‘송이(松耳)’ 스토리다. 혀와 눈이 아닌 코로 먼저 맛보는 버섯.
서양엔 훈련된 돼지가 냄새를 맡게 해 채취하는 버섯이 있다. 참나무 뿌리에 붙어사는 트러플(truffle·송로버섯)이다. 이 버섯 역시 향이 좋기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송이버섯’의 향기에 비할 수 있을까?
울울창창 짙푸른 소나무 숲에서 자라는 송이는 경북 북부와 강원도, 북한과 중국 등이 주산지인 귀한 식재료다. 버섯이지만 기이하게도 생선처럼 비늘이 있고, 옅은 갈색의 몸통은 사방 백리로 오묘한 냄새를 뿜어댄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송이의 가장 큰 미덕은 ‘아우라가 깃들어있다’ 말해도 좋을 향기. 이게 먹는 버섯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이유다.
한국엔 음식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가 몇 있다. 소설가 성석제도 그중 하나다.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닌 그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끼니때가 한참 멀었음에도 배가 고파온다.
바로 그 성석제가 쓴 산문 가운데 하나엔 서울 신촌의 일식집에서 ‘엄지손톱만 한’ 송이버섯 조각이 발산하는 향에 놀랐다는 경험이 담겼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겪은 ‘송이 섭식’ 체험은 스케일이 폭력적(?)일 정도로 크다.
대략 20년 전. 경상북도와 강원도 경계에 신당을 차린 늙은 무녀(巫女)를 만났다. “당신 사주를 봐주겠다” 하길래 “난 그런 걸 믿지 않는다”고 했더니, 눈가에 주름을 만들어 웃으며 “그럼 송이에 술이나 한잔 하고 가라” 했다.
달콤한 제의를 왜 거부하겠는가? 무녀가 가마솥만한 커다란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콸콸’ 붓고 어마어마한 양의 송이버섯을 가져다 넣었다.
일행 셋이서 kg당 80만 원이 넘는 송이를 족히 2kg은 먹었던 듯하다. 괴발개발 기사나 쓰는 한빈한 월급쟁이가 평생 맛볼 송이버섯을 하루에 다 먹은 셈이었다. 그 송이는 ‘놀라운 향’이 없었겠는가? 그럴 리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난봄 경북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 탓에 올해는 물론, 향후 30년 가까이 영덕, 봉화, 울진의 송이버섯을 맛보기 힘들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비단 미식가만이 아니다. 3등품 송이의 향기라도 맡고 싶은 이들의 실망감이 클 것 같다. 이 상황은 ‘아우라가 깃든 버섯의 비극적 절멸’인가? 조금 슬프다.
[필자 소개] 홍성식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 연재를 이어갈 홍성식은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