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기자 20여 명이 금융당국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취재 중 얻은 정보로 주식을 사고, 해당 주식 관련 기사를 쓴 다음 주식을 팔아 수익을 챙긴 혐의다. 이 같은 선행매매는 그 자체로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위법 행위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사건에 연루된 기자들이 꽤 긴 시간에 걸쳐 수억원대의 막대한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의심된다는 점이다.
KBS 등이 보도한 금융감독원 조사 내용을 보면, 한 기자는 무려 11개월 동안 상장사 10여 개를 대상으로 ‘호재 정보 취득→주식 매입 후 관련 기사 출고→주가 급등 후 매도’를 반복하며 5억원 넘는 차익을 챙겼다. 일간지, 경제지, 인터넷 언론사 등 여러 회사 소속 기자가 적발됐으며, 일부 기자들은 특정 주식 기사를 비슷한 시점에 출고하며 공모한 흔적이 나타난다고 한다. 배우자를 동원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도덕적 해이를 넘어 도덕적 파산에 이르렀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언론계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기는커녕 긴장한 분위기조차 감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선행매매에 가담한 소속 기자가 혹시 더 있는지, 이 같은 부당 행위를 방지하거나 색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지 떠들썩하게 점검하고 보완해도 모자랄 판에 대부분 언론이 침묵을 지킨다. 관련 보도를 한 언론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남의 허물을 들춰 공론화하면서 정작 제 눈의 들보는 애써 못 본 척하는 언론이 어떻게 권력의 감시자, 사회적 공기를 자임하겠는가. 이 사건 대응에 전체 언론의 신뢰 문제가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라도 언론사 내부의 감시·통제 시스템을 손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기자 행동 기준에 대한 약속 및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은 취재 보도 과정에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취재 중 취득한 정보를 보도 목적에만 사용한다는 지침을 제시한다. 상당수 언론사가 이와 비슷한 강령을 마련해 뒀다. 다만, 이 같은 규범이 허울에 그치지 않으려면 교육으로 끊임없이 되새기고 내용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윤리서약서를 작성하거나 자가진단을 실시해 상기시키는 방법, ‘취재 중 취득한 정보를 주식·부동산 등 투자에 활용하지 않는다’처럼 명확한 행동규칙을 정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데스킹’으로 대표되는 언론사 내부의 정보 선별·검증 기능 또한 살펴봐야 한다. 기자가 부장 등 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온라인 기사를 송고하는 일이 일반화되면서 데스킹 기능이 약화됐다는 지적은 이미 숱하게 제기됐던 터다. 이런 관행이 선행매매를 가능하게 하는 빈틈이 됐을 수 있다. 실제로 금감원은 ‘단독 취재’임을 강조한 온라인 기사가 선행매매에 이용됐다고 보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주가조작하려고 하면 패가망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이 회자하며 주식시장을 감시하는 눈길이 매서워졌다. 금융위원회, 금감원, 한국거래소 등 관계 기관이 모인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도 출범했다. 누가 과연 그 첫 제재 대상이 될 것인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데, 기자 선행매매 사건은 언론계가 그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안 그래도 언론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언론계 전반의 각성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