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통위 정상화를 둘러싼 리얼리티쇼

[언론 다시보기] 한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리얼리티쇼(Reality Show) 프로그램에 우리가 생각하는 리얼리티(현실 세계)는 없다. 인기리에 방영되는 각종 연애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실제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로맨스 감정과 과정을 담기 어렵다. 아니 담지 않는다. 연애에 이르는 설렘과 갈등, 성장 과정이 묘사되지만 그것은 개연성을 가진 프레임일 뿐이다. 때로는 출연자들마저 자신이 말한 스토리와 방송 내용이 다르다며 악마의 편집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보는 허구의 리얼리티마저 또 다른 허구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도 속아준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기대하는 것이 현실 세계의 복잡다단한 풀리지 않는 서사가 아니라 ‘사랑’ ‘결혼’ ‘육아’ ‘홀로서기’에 관한 간단명료한 감정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얼리티쇼는 허구와 진짜가 뒤섞인 초현실(Hyper-reality)의 세계를 설파하는 미디어와 그 세계관 구축에 기꺼이 공범으로 동참하는 출연자, 제작진, 시청자의 협업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 이야기가 담기지 않는 초현실 쇼는 허약한 구조로 쉽사리 무너진다. 뼈대가 튼튼하지 않은 프레임은 가벼운 공격에도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다시 실제 현장의 고민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반영돼 있느냐의 문제가 되고, 이를 직시하는 것이다. 모든 사안이 그렇듯이 말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설치법이 통과했다. 한편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마침내 ‘정상화’되었다고 강조하고, 누군가는 반대라고 주장한다. 사실 윤석열 정부 이후 방통위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된 사례는 누구 말마따나 차고 넘친다. 그래서 법안 통과가 정상화의 시작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8월 통과된 ‘방송3법’과 곧 시행될 방미통위 설치법이 어떤 프레임으로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프레임은 설정되었지만 이들 법안이 현장의 실제 이슈를 얼마나 충실하게 담고 있느냐에 따라 진짜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도 추후 논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후속 보완 입법을 하겠다고 하니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기회 삼아 이들 법안이 담지 않은 현장의 이야기 한 편을 전달하고자 한다. 방송산업 정상화의 풀뿌리에 해당하는 지역방송 이야기다. 8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방송3법이 주력한 것은 소위 말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편성 자율권 강화였다. 두 사안 모두 한국의 공영방송 역사와 운영에서 너무 중요한 주제다. 현업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두 문제가 공영방송이 직면한 모든 현안을 블랙홀처럼 잠식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장 8월 개정된 방송3법에서 편성 자율권 강화 장치로 도입한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에 지역과 민영방송(SBS)이 빠져 논란이 일었다. 외부 권력으로부터 보도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편성 자율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일이 어찌 서울 본사와 보도전문채널 등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제기됐다. 편성 자율권은 지방 권력에 대한 감시가 취약한 지역방송에 더 많이 요구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방과 지역방송 종사자를 중심으로 이의제기가 나왔지만 후속 논의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내가 모르는 것이길 간절히 바란다).


다음으로 정부 조직개편의 일환인 방미통위 설치법에 관한 논의는 방송과 통신의 구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미디어 환경에서 업계의 요구에 따라 이원화되어 있던 유료방송 진흥 업무가 방미통위에 포함된다는 점, 미디어 규제 기구의 개혁에 부응했다는 점, 그러나 OTT 정책이 빠진 업무 이관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 우려가 제기된다는 점이 주요 내용이다. 역시 여기에도 지역방송에 관한 고민과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그간의 방송법 관련 개정안에는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적잖이 지속된 지역방송 현안 논의 중 어떤 것도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일 잘하는 실용정부를 표방하고 지역균형발전(5극3특)을 국정 운영의 중요한 중심축으로 제시한 정부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속 가능 전략을 기대했던 지역방송 현장에서는 아쉬움과 실망이 더 컸다. 부디 후속 논의에서는 지역방송의 현실과 고민이 누락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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